[기고/김인택]학점 인플레는 대학의 ‘제 무덤 파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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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택 명지대 통신공학과 교수
김인택 명지대 통신공학과 교수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대학 졸업생의 90%가 B학점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대학에 있는 필자도 학점에 거품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통제받지 않는 제도의 몰락한 모습이다. 학생 입장에서야 취직에 좋은 학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해될 법하다. 그러나 이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대학 교육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또 우리 사회 전체에도 부정적 악순환의 원인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중고교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만만하게 보는 미국의 교육이 대학으로 가면 우리를 앞질러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하고 체험하는 교육을 통해 기본기가 잘 다져지고, 모르면 질문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교수들이 TV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강의를 잘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데는 학점이 중요한 동기 부여를 하고 있다. 미국은 학생이 대학에 입학해 4년 만에 졸업하는 비율은 40%대이고 6년 만에 60% 정도가 졸업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우리가 알고 있는 명문대를 살펴보면 학생들의 졸업 비율이 90% 후반이다. 이는 훨씬 낮은 비율의 학생만이 졸업하는 대학이 있다는 의미다. 즉, 미국 대학은 입학생 간 수준 차가 있더라도 졸업 사정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부실하지 않은 대학생을 사회에 배출하는 구조다. 공정한 학점 부여가 이런 구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럼 6년 이후에도 졸업하지 못한 학생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할 때 답은 간단하다. 중도에 포기한다. 우리 정서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싼 등록금까지 내면서 4년 만에 졸업하지 못한다면 그 학교에 학생이 입학하지 않으려고 할지 모르겠다. 우리의 현실은 후한 학점을 부여하는 것을 학생에 대한 서비스라고 착각하고 있다. 좋은 학점이 있어야 취직이 되니까. 그러나 이제는 기업의 인사 관계자들에게서 학점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말도 듣게 된다.

학점 거품은 제 무덤 파기이다. 학점 잘 주는데 죽도록 공부할 이유가 없다. 강의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고, 졸업생도 부실해진다. 사회는 부실한 졸업생을 활용하다 보니 대학 교육의 안이함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는 공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성과 지표가 학점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는 학생은 학점이 좋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면, 졸업생의 고용주는 고민스럽다. 말하자면 분별력을 잃은 학점 때문에 또 다른 지표를 찾게 된다. 그것이 표준화된 영어 시험, 해외 연수, 자격증인데 그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표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모두가 의문스러워하고 있다.

요즘은 공정한 사회가 화두다. 대학의 학점은 공정하지 않다. 열심히 공부해 학점이 높은 학생은 학점 거품의 희생자다. 빛나는 성과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한다면 공정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학점 거품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동기를 희석시키고 다른 지표를 찾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왜곡된 대학생활을 강요하고 있다.

학점 거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성적표에 학점뿐만 아니라 학과나 강좌 내의 순위를 남기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아무리 B학점을 받더라도 하위 10% 수준이라면 어떤 B학점인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평가에서 공정한 사회의 희망을 찾아야 할 때다.

김인택 명지대 통신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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