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형삼]한나라당이 드러커를 읽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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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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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일본 도쿄 호도고 야구부는 만년 하위팀. 감독과 선수는 따로 놀고 연습도 엉망이다. 엉겁결에 야구부 매니저를 맡은 여학생 미나미는 피터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구입한다. 기업경영의 고전을 야구 매니지먼트 서적으로 오해한 것. 하지만 미나미는 드러커의 조직관리 지침들을 하나하나 야구부에 적용시켜 팀을 쇄신하고 마침내 고시엔대회 출전권을 따낸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라는 소설의 줄거리다. 원작은 지난해 일본에서 ‘1Q84’를 따돌리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청춘소설과 경영서를 오가는 독특한 스토리 전개로 직장인들에게도 화제가 됐다.

그런데 소설 속 몇몇 대목은 요즘 ‘쇄신 쓰나미’에 휩쓸린 한나라당도 새겨볼 만하다. ‘기업의 사명과 목적을 정의하는 출발점은 고객’이라는 드러커의 지침대로 야구부를 ‘고객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조직’으로 정의한 것부터가 그렇다. 고객의 무더기 리콜사태에 직면한 한나라당은 새삼 조직의 정의부터 공유해야 한다. 기업 마인드로 고객의 현실, 욕구, 가치를 읽어내야 한다. 드러커는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팔고 싶은가?’가 아니라 ‘고객은 무엇을 사고 싶어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재·보선 때 ‘분당이 한나라당을 살려내라’는 식의 자해공갈성 선거구호가 등장한 것은 당내 정치에 골몰하느라 고객의 속내를 헤아리지 못한 탓이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이노베이션이 필요하다. 드러커에 따르면 이노베이션은 조직 안에서가 아니라 조직 밖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호도고 야구부도 조직 외부인 고교 야구계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이노베이션을 궁리했고, 그 결과물은 ‘노 번트, 노 볼 작전’이었다. 그들은 보내기 번트가 타고투저(打高投低)의 현대야구와 맞지 않다고 봤다. 주자만 나가면 번트를 대는 것은 선수와 감독의 사고를 경직시켜 야구를 재미없게 만든다. 스트라이크 대신 볼을 던져 범타나 헛스윙을 유인하는 투구도 선수, 감독의 사고를 좀스럽게 만들고 시간을 질질 끌어 야구의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여겼다.

한나라당이 살길도 이노베이션 차원의 쇄신에 있다. 계파 대립에 더해 주류 내부까지 분열된 경직되고 좀스러운 내홍에서 벗어나 변화의 무대를 정치권 전체로 넓혀야 한다. 관객은 책임도 권한도 없는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보내기 번트나 톡톡 갖다대는(그나마 성공확률도 낮다) 맥 빠진 경기보다는, 차기를 노리는 슬러거들이 이름을 걸고 소신껏 배트를 휘두르며 경쟁하는 모습이 보고 싶다. 공천권이라는 유인구로 타자들의 발목을 묶는 낡은 수(手)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호도고 감독은 야구에 관한 한 엄청난 지식과 정열을 지녔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이 문제였다. 부원들은 생각이 앞선 그가 무슨 말을 하고 뭘 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감독 또한 부원들의 욕구를 파악하지 못했다. 감독의 아웃풋이 조직에 인풋되지 않으니 성과가 날 리 없다. 드러커가 지적한 ‘전문가의 한계’다. 이런 관계,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은가. 미나미는 드러커의 조언을 충실하게 따랐다. 조직의 목표를 전문가에게 통역해주고, 전문가의 아웃풋을 조직원에게 통역해주는 매니저, 즉 전문가의 도구이자 가이드이자 마케팅 에이전트를 자처한 것이다. 소통 부재의 청와대-한나라당 사이에도 진솔한 통역을 맡아줄 매니저가 절실하다.

이형삼 출판국 전략기획팀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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