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불편과 불평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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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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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전문기자
고미석 전문기자
1822년 태어난 토머스 마셤은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활동한 평범한 목사다. 밤이면 촛불을 켜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가고, 먼 곳에서 일어난 소식을 몇 달 뒤에나 접하는 시대를 살아갔다. 그의 부모와 조부모가 그랬듯이. 인생 후반기 들어 그는 급격한 변화를 접한다. 증기선, 전기조명, 사진, 자동차, 전화, 영화, 라디오 등 생활에 수많은 경이를 가져온 것들이 19세기 후반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문명의 이기는 불과 150년前의 일

미국의 베스트셀러 저자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에서 마셤 목사가 세운 집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일상사를 실마리 삼아 공중보건, 향료무역, 산업혁명까지 어마어마하게 광범위한 세계사를 짚어 나간다. 상한 고기를 먹는 대신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고, 화장실 오물이 넘쳐나지 않는 청결한 거리를 산책하며, 유리창문 있는 집에 사는 것 등. 이 책은 기근과 질병이 반복됐던 전쟁 같은 삶에서 가장 기본적 수준의 안락함을 성취한 것이 겨우 150여 년 전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우리는 삶에서 갖가지 종류의 편의―깨끗하고, 따듯하고, 배부른 상태―를 누리는 데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런 것들 대부분이 얼마나 최근에야 시작되었는지를 그만 망각하기가 쉽다. 사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성취하는 데에는 정말 무한히 긴 시간이 걸렸는데, 일단 성취되고 나면 그야말로 물밀듯이 밀려왔다.” 작가의 말처럼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투쟁한 원시의 세월에 비해, 편리함에 길든 문명의 질주란 한순간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일본 열도를 휩쓴 지진과 쓰나미는 졸부처럼 으스대온 인간 문명의 콧대를 납작하게 꺾어 놓았다.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을 다 잃고 마실 물과 잠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언제든 닥칠 수 있다는 뼈아픈 자각을 하게 했다. 장구한 고난의 시간을 잊고 집단적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듯한 지구촌 사람들에게 보내는 계시처럼 보인다. ‘산다는 건 때로/오래된 직업 같다/너무 안전하고 너무 익숙한 길 위에서/갑자기 방향을 잃는다’(김규린의 ‘고쳐 쓰는 일기’)

인간 삶의 허약한 토대와 직면하는 순간, 불현듯 우리네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비판도 아니면서, 길이 막혀도 음식 배달이 늦어도, 사소한 불편에 늘 과민 반응을 한다. 소셜미디어까지 등장해 불평의 빠른 생산과 소비에 한몫한다. 이런 것이 문명이고 진보인가. 불편을 해소해 온 과정이 ‘발전’이었다면 이는 더 큰 불편과 불평, 심지어 불행까지 낳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귀족들 마차가 거리를 메우자/파리와 런던의 시가지를 온통 말똥이 점령했었다지/마차에서 쏟아지는 말똥이 공해가 되어/가솔린 쓰는 자동차를 만들었다지/말똥보다 가득하고/말똥보다 무서운/배기가스 매연이 나타날 줄 몰랐었겠지/그리운 말똥/먼 훗날에도 시인은 여전하겠지/그리운 매연/이라고 쓰겠지.’(고운기의 ‘문명’)

불편 느낀다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

불평의 근원엔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도사린다. 2006년 미국의 윌 보웬 목사는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뿌리에는 불평이 있다’는 믿음으로 3주간 불평 없이 살아보자는 ‘불평 없는 세상’ 캠페인을 펼쳤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자주, 많이 불평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목사는 “불평은 나쁜 입 냄새에 비유될 수 있다. 다른 사람 입에서 나는 냄새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입 냄새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또 불평엔 중독성이 있다. 자꾸 하면 습관 된다. 불편함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불편 없는 인생을 바랄 게 아니라 불평에 물들지 않는 연습을 해보자. 습관성 불평을 마음에서 내려놓고 눈부신 봄빛에 그 습기를 말려 보자.

‘잠시 잊은 것이다/生에 대한 감동을 너무 헐값에 산 죄/너무 헐값에 팔아버린 죄,/황홀한 순간은 언제나 마약이라는 거/잠시 잊은 것이다’(박라연의 ‘沈香’)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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