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철]구제역보다 불안한 ‘장관의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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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성균관대 학부대 교수
이상철 성균관대 학부대 교수
구제역으로 약 34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매몰 처리된 가운데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19일 “(구제역 바이러스는)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듣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구제역 전염 경로를 논의할 때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공기 전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해 동의했고 발생지와 가까운 거리도 차단되는데 수십 km 떨어진 곳까지 확산되는 것을 보면 개연성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확인 안된 “공기 감염” 발언 소동

몇 년 전 신종인플루엔자라는 전염병으로 소란스러웠던 경험과 영화 ‘아웃 브레이크’를 떠올리면서 구제역이 언젠가 인간에게도 전이되는 변형 바이러스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무지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환경부가 ‘이 장관의 발언은 180도 반대로 이야기한 것’이라며 ‘유정복 농림부 장관은 공기 전염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 장관이 착각했다’고 번복하는 발표를 보고 혼란스러웠지만 믿기로 하였다.

구제역 사태는 소와 돼지 등 가축의 재앙에서 환경의 위기로 전환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구제역 매몰지 침출수에 의한 2차 오염으로 상수원이 오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이달 초 “매몰지 침수로 환경 재앙이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비판을 받자 “경각심을 일으키려고 했다”, “특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하기 때문에 정말로 재앙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공기로 전염될 수 있다고 입증할 만한 사례나 증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구제역 대책 관련 부처 수장인 이 장관의 발언은 정부의 신뢰도와 관련이 있다. 구제역이 확산되는 가운데 관계 부처 장관의 오락가락하는 말과 상황에 대한 지나친 규정은 정부의 신뢰도를 떨어뜨린다. 행정부의 리더나 수장은 정치사회적 현상에 대해 국민이 불안해하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설명해야 한다. 지나친 과장이나 축소는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린다. 소통할 때는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과 발화자의 신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뢰가 떨어지면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뢰는 말에서부터 시작하여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한자의 믿을 신(信)이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1979년 7월 15일 국민에게 에너지 위기를 강조하기 위한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경제적 위기를 과장하고 절약을 위한 훈육적인 행동 지침을 나열하며 미국이 도덕적 위기에 빠졌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실패와 혼란, 질병 등과 같은 은유적 어휘를 반복하며 미국이 병들었다고 규정했다. 또 미국이 ‘자신감의 위기’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역사가들은 카터의 이 연설을 ‘자신감의 위기 연설’ 또는 ‘질병 연설’이라고 혹평하며 피해야 할 연설의 전범으로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위기극복은 국민과의 소통이 관건

재난이나 위기는 리더들에 의해 규정되고 선언된다. 리더는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바람직한 조치와 행동을 즉각적으로 취할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가야 한다. 재난과 위기 때 리더의 소통은 사실성, 즉시성, 행위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 아울러 내용을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해당 부처 수장이 해야 할 임무이다.

영국의 처칠 총리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위대한 커뮤니케이터로 칭송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복합적인 외교적 사안이나 과학, 의학, 전문적 사안을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설명하고 설득했기 때문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국가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였다. 정부는 축산농민은 물론이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통을 중시해 구제역 사태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바란다.

이상철 성균관대 학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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