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정수]사교육비 줄었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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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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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지난해 우리나라 총 사교육비 규모가 20조9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도 24만 원으로 전년보다 2000원 감소했고, 특히 중학교 사교육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든 것으로 발표됐다. 통계청에서 체계적으로 사교육비 규모를 조사해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 2007년부터라는 점에서 아직 추세를 이야기할 수는 없고, 감소분을 국민이 체감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반가운 소식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사교육과 전쟁을 선포한 뒤 사교육비 저감을 교육정책 목표로 전면에 내세우고 각종 정책결정을 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나타내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학원 심야교습 금지, 사교육 없는 학교 사업, 교육방송(EBS) 수능출제 비율 제고, 방과후학교 확대, 특목고 입시 개편 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해온 사교육과의 전쟁이 단기 성과를 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꺼풀을 벗겨 상세히 들여다보면 사교육 저감 기조가 정착되고 사교육시장이 축소되고 있다고 안심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에는 방과후학교 비용 부담이 제외돼 있다. 1조 원이 넘는 학부모들의 추가적인 교육비 지출 부담이 빠져 있는 것이다. 방과후학교 교육비를 공교육비(등록금)라고 보기 어렵다면 당연히 이 부담은 사교육비 통계에 포함되어야 한다.

1인당 사교육비가 2000원 줄었다는 통계를 실감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은 현실에서 사교육비의 압박에 따른 국민의 고통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정책 당국은 통계에 연연하기보다 공감할 수 있는 장기적 정책 대응에 힘을 쏟아야 한다.

학교 급별로 지난해 중학교 사교육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든 결과는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 단기적으로 사교육을 줄이는 것이 계층 간 격차, 지역 간 격차, 선행학습으로 인한 각종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진정한 자율화를 통한 수월성 교육과 다양한 학습기회의 제공이라는 또 다른 가치를 희생한 결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부터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 입시를 타율적(자기주도적 학습전형)으로 개편한 결과 상당수 자율형학교는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정부가 전면적으로 추진한 학교 다양화 프로그램의 하나인 자율형 사립학교의 설립 취지가 퇴색된 결과다.

사교육비 저감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해서는 추세화를 이루기 어렵다.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편, 교과교실제 전면 도입, 고교 내신제도 절대평가로 전환, 교원 양성 및 승진제도 변화, 입시제도와 교과과정 개편, 그리고 대학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지속적인 정책 역량을 집중할 때 체감하게 될 것이다.

사교육비 감소 자체가 교육정책의 상위 목표나 평가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생대책으로 저소득·중산층 사교육비 경감은 필요하지만, 교육재원의 확충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에서 민간의 자발적 교육투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충실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의 경우 사교육비 투자라고 해서 억제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사교육과 공교육의 합작생산으로 나오는 결과의 품질이다. 높은 교육열이 양질의 인재 양성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획일적인 학교제도로는 교육비 지출과 투입시간에 견줘 최종 교육성과는 낮을 수밖에 없다. 사교육비 저감의 기조를 추세화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교육개혁을 구조조정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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