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원철]낡은 소방차, 낡은 생각, 낡은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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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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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철 연세대 교수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조원철 연세대 교수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소방관이 아파트 고드름을 제거하려다 사다리차에서 떨어져 숨진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고드름 제거를 포함한 모든 것을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무한 복지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정치권에서 발본색원, 항구대책, 복지정책을 그렇게 외치고 있으니 국민은 그렇게 믿고 싶고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해 및 불안전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시대임을 알아야 한다. 자기 안전은 자기가 책임진다는 시민정신이 필요하다. 내 집 앞 눈 치우기도 마찬가지다.

소방차 20% 법정 내구연한 넘겨

고가사다리차만 낡은 것이 아니다. 생각도 낡았고 제도도 낡았다. 장비의 유지관리는 건강관리와 같다. ‘일상으로, 스스로’가 기본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지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노화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서류상으로 내구연한을 늘린다고 장비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영세 제조회사가 문을 닫으면 사용하고 있는 장비의 보수와 유지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근본적으로는 예산의 문제이다. 특히 공공예산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는 것으로 보이는 국회가 문제다. 주먹질에다 외유를 다반사로 하지 말고 전국의 소방안전시설을 현장에서 점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되고 낡은 장비는 빨간 색칠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관리에 필요한 모든 장비는 그것을 사용하는 안전관리자들의 안전 확보에 1차적인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안전관리자들과 장비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민의 안전관리에도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국민의 안전관리는 일상의 문제이다. 생활 속 안정과 편리성의 확보는 국민의 일상을 유지하게 하는 중요한 복지 문제인 것이다. 국민 복지의 바탕은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유지는 정부의 헌법적 의무이다.

고층건물들의 동간 간격이 그렇게 좁은데도 그 사이에서 고가사다리를 펼쳐 세우니 불안정은 당연지사이다. 골목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더 높은 고가사다리차를 도입하겠다고 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렇게 큰 차량들이 다니고 진입할 수 있는 도로는 있는가. 고가사다리를 안전하게 펼쳐 세울 수 있는 공간은 있는가. 우리의 공간구조와는 아주 다르고 걸맞지 않은 정책들이 항구대책은 아닐 것이다. 초고층아파트 지구에 특별소방대를 설치하고, 재난에 대비해 고가차량을 도입하고, 중대형 소방용 헬기도 준비하고… 이건 아니다. 초고층시설에는 첨단 소방시설을 설치하고 입주민들은 적절한 훈련을 받도록 하여 자체 소방이 가능하게 해야 할 것이다. 기본적인 소방차도 법정 내구연한을 넘은 것이 20%를 넘는다니, 법정 내구연한도 오뉴월 엿가락 늘이듯 해 놓은 것 아닌가. 기초자치단체에 모양새 좋게 배정돼 있는 소방차의 현황을 점검해 보면 한숨이 나오는 상태임을 누구나 느끼는 실정이다.

고드름 제거까지 소방관이 해야하나

정부조직이 아무리 방대하고 충실하다 해도 국민의 일상을 모두 지원할 수는 없다. 날로 복잡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기본은 ‘나의 문제는 내가 해결한다’는 자세와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또 자기 안전관리 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원봉사를 통해 이웃을 돕는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의 전통인 상부상조 정신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잘못된 생각도 버려야 하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나아가서 공공예산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형평성도 생각하는 예산 집행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고드름 제거 작업 때문에 유명을 달리한 소방관의 명복을 빌며 다치신 분의 조속한 쾌유를 빈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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