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노벨재단 한국인 임원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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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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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재단에는 110년 역사에서 유일한 동양인 임원이 있다. 특임 고문으로 활동 중인 한영우 박사(77)다. 1950년대 스웨덴 유학 후 내각 주치의로 발탁되면서 고위 인사들과 쌓은 인연을 바탕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 스웨덴 국왕이 참석하는 노벨상 시상식 및 만찬에 16년째 참석하며 인맥을 다지고 있다.

한 박사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예우는 극진했다. 지난주 노벨상 시상식을 앞두고 스톡홀름에서 열린 전야제 리셉션과 축하 음악회 등에서 한 박사 부부는 여러 인사의 환대를 받았다. 노벨재단 사무총장과 노벨박물관장 등은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했다. “내가 치매나 노망이 난 것 같으면 (종신직인 고문 업무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알려 달라”는 말을 먼저 꺼낼 정도로 연로한 한 박사를 따뜻한 미소로 맞았다. 고위 인사 및 선택된 소수만 얻을 수 있다는 노벨상 관련 행사의 입장권도 그의 뒤늦은 한마디 요청에 곧바로 마련됐다. 그의 이런 영향력 덕분에 기자도 행사 참석이 가능했다.

하지만 한 박사에 대한 한국의 평가는 차가운 편이다. ‘꼬장꼬장한 원로’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도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을 위해 뛰었다는 이유로 일각에서 나를 친북좌파로 낙인찍었다”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상은 중요한 상인 만큼 심사과정에서 한국인 후보의 업적홍보 같은 합법적 로비, 스웨덴과의 협력 업무 등에서 한국이 자신을 좀 더 ‘활용’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은 노벨상 수상을 위한 투자나 지원도 부족해요. 일본은 대사관에 노벨상 담당관까지 따로 두고 있는데 우리는 뭡니까.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나 같은 역할을 해줄 후임자도 찾아야 할 텐데….”

올해 강력한 노벨상 후보였던 고은 시인과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 등의 잇단 수상 무산으로 노벨상 수상에 대한 한국의 갈증은 더 커진 상황이다. 한 박사의 말처럼 노벨상은 단순히 한 개인의 업적에 대한 시상이 아니라 국가의 투자와 외교력이 총동원되는 상징적인 결과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를 뒷받침할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세세한 관심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어디 노벨상뿐이랴. 국제적 역량이 요구되는 국제무대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물밑 영향력은 절실하다. 그 바탕은 국제적 인물을 키워내고 활동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국가적인 투자에 나서는 일이다. 한 박사의 가벼운 한탄이 어느새 무거운 비판으로 다가왔다.―스톡홀름에서

이정은 국제부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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