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관의 ‘주관적 판결’ 엄격한 제한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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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57년 만에 대대적으로 고친 형법 개정안에는 법관의 자의적인 감형을 제한하고 상습·강력범에 대한 가중처벌을 없애는 대신에 새로운 개념의 보안처분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다. 이 가운데 법관의 감형 제한은 국민의 법감정을 적절히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행 형법은 감형 선고 요건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아 판사의 작량감경(酌量減輕)이 남발되는 사례가 많았다.

판사들이 감형을 해주면서 내세웠던 이유들 중에는 국민이 보기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범 김길태의 경우 이전 두 차례 범죄에 대한 선고에서 ‘성폭행을 제외하면 피해자의 신체에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는 희한한 감형 사유가 제시됐다. 판사의 자의적 감형은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일이 잦았다. 어느 변호사를 선임하느냐에 따라 선고 형량이 크게 차이 나 전관예우(前官禮遇)를 부추기거나 돈의 힘에 의해 처벌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개정안은 범행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거나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등 4가지 경우만을 형량 경감을 해줄 수 있는 사유로 못 박았다. 그러나 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검찰과 법원이 실제 법을 적용할 때 그 취지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이런 점까지 감안해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좀 더 정합성 높은 개정 형법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차제에 판사가 국민 정서나 상식과 동떨어진 ‘자의적 판결’을 하는 행태도 제도적으로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전교조 교사들의 빨치산 교육,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조합원들의 시국선언,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국회 폭력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그런 사례들이다. 상급심에서 판결이 바뀌는 경우가 많다고 하지만, ‘1심이 잘못돼도 2, 3심에서 바로잡으면 그만’이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동네병원에서부터 병을 제대로 치료해야지, 동네병원에서 치료를 잘못해 병을 악화시켜 대학병원으로 보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판사는 법조문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이지 법을 만드는 입법기관이 아니다. 중요 사건은 3인의 판사가 참여하는 재정합의부에 배당하고, 하급심 판결에 문제가 있을 경우 법관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사회적 혼란을 초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신속하게 최종 판결을 내려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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