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인동] ‘망신살’ 日검찰 “한국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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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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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大阪)지검 특수부 검사의 증거조작 사건으로 일본 열도가 시끄럽다. 일본 검찰 특수부는 정치인 관료 기업인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쳐 온 검찰 내 최고의 엘리트집단이다. 수사에 관한 한 ‘프로 중의 프로’라고 인정을 받아왔던 조직이다. 이런 특수부가 증거를 조작하다니…. 일본 국민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오사카지검 특수부는 장애인단체에 주어지는 우편요금 할인제도를 악용하려는 단체를 위해 허위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후생노동성 계장을 체포하고 이를 지시한 혐의로 상관인 무라키 아쓰코(村木厚子) 현직 후생노동성 국장을 구속기소했다. 특수부는 이 과정에서 부당한 지시의 근거로 플로피디스크를 제시했다. 하지만 디스크에 기록된 허위증명서의 발급일자가 오히려 무라키 국장에 대한 공소유지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날짜를 조작했다. 일본 최고 검찰청은 증거를 조작한 오사카 특수부 주임검사를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하고 이를 묵인한 특수부 부장과 부부장도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선 일본 형사사법제도의 몇 가지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는 체포된 피의자에게 구속영장 신청이 이루어지는 비율이 93%이고 이 가운데 99% 이상이 영장이 발부된다. 구속영장 기각률이 평균 16.5%인 한국에 비하면 매우 높다.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검찰이 영장을 신청하면 법원이 사실상 거의 수용하는 형사사법의 관행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유족이 피해자의 영정을 들고 법정 한가운데 앉아 재판을 지켜보고 재판이 끝난 후에는 기자회견까지 연다. 한국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광경이다. 과연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반면 피의자는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그의 얼굴과 가족 내력까지 모두 공개된다.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와 가족은 사회에서 매장돼 버린다.

일본에서는 수사단계든 공판단계든 부인하면 형량이 엄청 세진다. 아직도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관행과 이에 동조하는 법원의 태도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 형사사건의 80%가 부인사건인 반면 일본은 80% 이상이 자백사건인 점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에서는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해도 수사기관은 바로 수리하는 경우가 드물다. 일단 피해보고를 받은 후 사건이 되는지를 판단해 확실히 범죄가 성립하고 입증이 가능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수사를 개시한다.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이다.

특수부의 증거조작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은 이 같은 일본 형사사법의 현실이 만들어낸 사례는 아닐까. 특수부는 국가의 기강을 잡는다는 명분에 따라 자신들이 그린 밑그림에 사건을 맞추려 했다. 법원이 이를 견제하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은 거칠 것이 없다. 이번 사건도 검찰 내부에 소문이 퍼지면서 사건화된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에서는 수사 과정의 비디오촬영 등 형사사법제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보다 앞서가는 한국의 여러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변호사로서 긍지를 느낀다. 일본 최고 검찰청이 최근 구속한 오사카 특수부 부장과 부부장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항전태세를 밝혔다. 프로들의 ‘정면승부’가 남아 있는 셈이다. 귀추가 주목된다.

박인동 변호사·법무법인 화우 일본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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