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일 비용, 가장 확실한 대책은 재정 건전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2일 03시 00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김덕룡)가 20일 ‘남북협력과 통일비용’을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정부 예산의 1%를 통일기금으로 적립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남북협력기금을 북한의 돌발사태 때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북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통일 문제는 종전보다 현실성을 띠기 시작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통일세 등 현실적 방안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한 뒤 정부와 한나라당도 통일비용 조달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통일은 정치와 외교안보의 과제이지만 비용 논의는 ‘경제 마인드’를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용을 최소화하고 효과를 극대화하는 해법을 고민해야 한다. 서독은 인구가 동독의 4배였던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으로 동유럽권에서 그런대로 살 만했던 동독과 통일했다. 신흥 경제국인 한국은 인구가 북한의 2배이고 깡통 찬 북한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다. 그만큼 부담의 무게가 다르다.

통일세든, 예산의 일정 비율이든 통일비용을 적립하려면 그만큼 투자나 소비로 돌아가는 돈이 줄어든다. 해마다 통일비용 적립금을 묶어두면 경기수축형 경제운용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성장잠재력의 제약으로도 이어진다. 적립한 돈을 굴리기 위해 국내외 국채에 장기투자하거나 기업에 빌려준다면 막상 통일이 닥쳤을 때 즉각 활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지닌 민관(民官) 경제전문가가 적지 않지만 대통령의 통일세 발언을 의식해서인지 공개적 시시비비는 꺼린다.

재정이 건전하면 갑자기 많은 재원이 소요되는 돌발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여력이 그만큼 커진다. 우리가 1997년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다른 위기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한 전직 경제장관은 “조세부담률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가급적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다가 북한 급변사태 시 세금 인상이나 국채 발행을 통해 통일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통일세나 기금 적립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가장 확실하고 근본적인 통일비용 대책은 재정 건전화다.

‘경제의 파이’를 더 키워놓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의 절대 규모가 커지면 같은 통일비용이라도 부담이 줄어든다. 경제가 나빠지면 경기 부양을 위해 돈 쓸 곳은 많은데 세입(稅入)은 축소되고 재정적자가 커져 통일비용을 마련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세입기반 확대와 재정 건전화와 직결되는 경제성장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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