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문화대국 중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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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1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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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명과 문화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중국의 최전성기로는 송나라 시대(10∼13세기)를 꼽는다. 송나라의 과거제도는 오늘날 한국의 공직자 선발제도보다도 앞섰던 느낌이다. 송나라는 시험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수단을 동원했다. 제출된 답안지를 다른 사람들이 일일이 옮겨 적어 채점자에게 넘겼다. 채점자가 답안지의 필체를 보고 누구 것인지 알아채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험관이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봐주는 것을 막기 위해 시험당국과 관련이 있는 응시자들은 따로 모아 시험을 치르게 했다. 힘 있는 인사의 자녀들이 당연한 듯 특혜를 받고 채용되는 21세기 한국보다 훨씬 공정한 시험이 이뤄졌던 것이다.

이런 과거제도를 통해 송나라 지식인들은 가문과 신분을 뛰어넘어 누구나 공직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학문과 지식을 숭상하는 풍토가 자리 잡았다. 같은 시기에 유럽은 철저한 신분사회였다. 누구도 자신이 속한 계급의 벽을 넘을 수 없었으며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는 전쟁에 나가 뛰어난 공을 세우는 길밖에 없었다. 이런 시대에 송나라의 인재채용 방식이 갖는 문화적 의미는 작지 않다.

중국 당나라 시대(7∼10세기) 수도 장안(현재의 시안·西安)은 세계를 향해 문호가 개방된 국제도시였다. 서쪽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이방인들이 몰려들었고 한국 일본에서도 장안을 찾았다. 당나라는 포용성이 뛰어났다. 불교는 물론이고 이슬람교 기독교 배화교 등 세계의 여러 종교가 이곳에 전파돼 꽃을 피웠다. 장안의 인구는 100만 명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으며 외국인 거주자는 5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의 장안이 ‘세계의 수도’로 불린 배경이 그러했다.

포용력 개방성 자랑한 세계중심

중국 문명을 평가하는 데 인색한 서양 학자들조차 11세기부터 16세기까지 중국의 문화 및 경제 공업 수준은 유럽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고 인정한다. 중국은 19세기 아편전쟁에서 패하면서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 이전까지 중국의 문명과 문화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우리에게도 중국은 넘보기 힘든 문화대국이었다. 청나라 시대(17∼20세기 초) 수도 베이징은 세계의 학문과 지식이 모이는 곳이었다. 중국 고전부터 서양의 과학기술까지 모든 학문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유리창(琉璃廠) 거리는 무려 27만 칸에 이르는 수많은 책방으로 가득한 ‘문화의 거리’로 조선 지식인들을 가슴 설레게 했다.

조선의 문예(文藝)군주 정조는 베이징에 사신으로 가는 신하들에게 이곳에서 최신 서적을 구해 오라고 주문했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베이징을 오가며 천문 지리 수학 등 새로운 지식을 수집했다. 한국에 천주교를 뿌리내리게 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 등 서학도 베이징을 통해 조선에 들어왔다.

중국은 주변 이민족들의 침략에 끊임없이 시달렸으나 문화가 이를 이기는 큰 힘이 됐다. 주로 유목민들인 변방 세력들은 군사적 힘에서는 앞서 있었으나 중국은 이들을 ‘중국 문화의 교화를 받지 못한 오랑캐’라며 무시했다. 중국의 선진적 제도와 앞선 문물에 감탄한 주변국들은 타협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의 우월성을 인정하는 선에서 외교관계를 맺었다. 정기적으로 조공을 주고받는 이른바 ‘중국적 세계 질서’ 안으로 편입됐던 것이다.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후 170년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강대국으로 복귀했다. 우리 바로 옆에 강한 상대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한국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하지만 요즘 중국의 중요한 정책 결정이나 판단을 보면 그 옛날 ‘위대한 중국’을 계승하고 있는 게 맞는지 다시 쳐다보게 된다. 문화 콘텐츠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짝퉁이 판치는 현실은 아직 경제적으로 커가는 단계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관련된 역사 왜곡이 계속되는 대목에서는 ‘문화대국’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진실에 눈을 감는 폐쇄성,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편협함이 엿보일 뿐이다. 주변국과의 갈등이 빚어졌을 때 중국이 ‘당한 만큼 되돌려준다’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도 실망스럽다. 중국이 자랑하던 그 포용력과 관용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가 올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중국이 보여준 신경질적 반응에 이르러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문화 결핍’ 초강국에 세계가 우려

중국의 경제력 군사력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역사에서 중국처럼 많은 인구를 보유한 단일국가는 없었다. 중국은 인류가 과거 경험한 적이 없는 초강대국으로 조만간 부상할 것이다. 지금도 세계는 중국의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요동친다. 이런 막강한 나라가 문화적으로 결핍된 국가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바로 옆에 위치한 우리는 더 답답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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