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남국]때론 연기도 리더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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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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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에서 리더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리더의 말투나 옷 입는 방식까지 조직원에게 전염된다.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리더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동물적 본능에 해당한다. 실제 동물 집단의 특징을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무리의 상당수는 동료보다 리더를 훨씬 자주 쳐다본다.

리더 입장에서 이런 과도한 관심은 골치 아픈 일이다. 농담 한마디도 마음 편하게 하기 힘들다. 리더도 사람인지라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끼지만 거침없이 이를 표현했다간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출근길에 기분 나쁜 일을 경험한 리더의 짜증 한마디로 사무실 전체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것을 경험한 직장인이 많다.

전문가들은 리더가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실제 필자에게 망해가던 회사를 살려놓은 경험담을 들려준 한 중견기업 오너의 이야기는 리더십에 대한 생생한 교훈을 준다.

이 오너는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고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했던 최고경영자(CEO)까지 비전이 없다며 퇴사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직원들도 패배의식에 젖어있었다고 한다. 오너라고 뚜렷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었고 엄청난 불안감도 느꼈다. 하지만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회생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직원들이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회사를 살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런 ‘연기(演技)’를 했다고 한다.

처음에 직원들은 오너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줄기차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자 직원들 사이에서 “오너가 뭔가 해결책을 갖고 있나 보다”라는 기대감이 퍼졌다. 이후 분위기는 반전됐고 다양한 혁신적 아이디어가 실행되면서 이 회사는 급성장했다.

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더라도 희망의 메시지가 조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진짜로 웃겨서가 아니라 억지로 웃더라도 엔도르핀, 세로토닌 등의 호르몬이 분비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의 무의식은 진위와 관계없이 반응한다. 그리고 무의식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무작위로 학생들을 골라 “너희들은 지적으로 뛰어나다”는 메시지를 반복하자 실제 학생들의 학업 성적이 향상됐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69일간 이어졌던 칠레 광산 탈출 드라마에서도 희망의 위력을 볼 수 있다. 지하 700m,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극한 상황에서 초기에 갈등과 반목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리더 역할을 맡은 루이스 우르수아 씨(54)도 좌절감을 느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독려하며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엘비스 프레슬리 흉내를 잘 내는 광부에게 오락을 맡겨 안정감을 찾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만약 우르수아 씨가 불안감과 절망감을 그대로 표출했다면 이 드라마는 비극이 될 수도 있었다.

항상 주목의 대상이 되는 리더의 희망과 확신은 강한 전파력을 갖고 있다. 로버트 서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제안한 ‘현실화될 때까지 가장하기(faking it until you make it)’ 전략은 성과 창출에 매우 유용한 도구다.

김남국 미래전략연구소 경영지식팀장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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