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적자타령 건강보험 부실책임부터 따져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5일 03시 00분


기초생활보장대상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에 무료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의료급여 제도 악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처방과 진료 같은 급여 일수가 2000일을 넘어선 의료급여 수급자가 379명이나 됐다. 당뇨병 8267일 치 등 모두 1만6066일 치, 하루 평균 44일 치의 약을 처방받은 사람도 있다. 작년 의료급여 제도에 따라 병·의원과 약국에 지급된 건강보험 지출액은 4조7548억 원으로 2008년보다 6.3% 늘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하루에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며 같은 의약품을 처방받는 얌체 짓을 해도 병·의원이나 약국은 파악할 수 없다. 의료기관들은 환자를 많이 받을수록 보험급여를 늘릴 수 있어 ‘의료쇼핑족(族)’ 적발에 소극적이다. 환자와 의사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통제하지 못하는 제도의 허점은 건강보험 전반에 만연해 있다.

올해 건강보험 수입은 31조7000억 원, 지급액은 33조 원으로 전망돼 1조3000억 원의 당기적자가 예상된다. 그동안 적자를 충당하던 적립금 2조2586억 원도 내년이면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건강보험 재정은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있다.

정부는 2000년 7월 지역 의료보험과 직장 의료보험을 건강보험으로 통합한 뒤에도 보험설계 초기인 1970년대 도입한 저(低)보험-저수가 구조, 비효율적 관리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보험적용 대상과 가입자만 늘렸다. 여야 정치권은 돈 들어올 곳은 따져보지 않고 선거 때마다 급여 수준을 늘리는 공약을 남발했다. 의약분업 이후 늘어난 약제비, 높은 외래진료 수진율, 3차 의료기관 환자 쏠림 현상도 한몫했다. 정부 정치권 환자 의사들이 의료급여를 공돈처럼 인식하는 행태가 겹치면서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가속화했다. 부실을 불러온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2001년과 2002년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 위기를 맞자 당시 정부는 부랴부랴 건강보험료를 8.5% 올리고 담배 등에서 건강증진기금을 거둬 겨우 메웠다. 보험 혜택은 더 늘어나길 바라면서도 부담은 지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 이런 비상대책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당장 수입을 늘리기 힘든 구조라면 먼저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곳곳에서 줄줄 새는 건강보험의 구멍을 내버려두고 적자타령만 해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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