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배영찬]유사학회 통합 학계가 나서야

동아일보 입력 2010-09-13 03:00수정 2010-09-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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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연구중심대학을 지원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첫 사업이 1995년 시행된 국책대학원 지원사업이다. 지금의 BK21사업 전 단계로 5개 대학을 5년간 지원했다. 당시 교육부는 사업단 선정 시 논문의 양적 지표를 처음 적용했다. 그 후 각 대학에서 발표논문 수가 교수 승진·승급의 기본지표가 됐다. 그런 이유에선지 1990년 후반부터 대학가에서는 유사 학회가 세포분열하듯 급격히 늘어났고 학회마다 학술지를 편찬해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학회당 평균 등록 교수 23명 불과

신생 학회 임원들은 학술지를 한국연구재단의 등재지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등재지가 아닌 학술지는 논문업적평가에 인정되지 않아 교수들이 외면하므로 학회의 존속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생산된 등재지와 등재후보지가 총 1885종이나 된다. 1950년 전후 20여 개에 지나지 않던 학회도 2010년 현재 한국연구재단에 등록된 것만 2635개에 이른다. 국내 대학은 4년제와 2년제를 합해 400여 개이며 전임교원은 약 5만9200명이다. 학회당 평균 등록 교수가 23명밖에 안 된다는 것인데 이는 국내 학회가 터무니없이 많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다 보니 교수들은 적어도 5∼7개 유사 학회에 등록하고 학회 행사를 쫓아다니다 보면 연구와 강의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된다. 무분별한 유사 학술지의 양산도 문제다. 논문 수만 부풀려져 논문의 질이 크게 낮아질 수 있다. 또 중복 게재 등 학문적·도덕적 몰이해, 동일한 내용과 결론의 ‘자기복제’ 논문이 다른 유사 학술지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군소 학회의 난립은 학회 재정에도 영향을 준다. 기업체의 한 임원은 봄, 가을 학술대회 기간에 몰려오는 교수들의 협찬 요구로 엄청난 부담감을 느낀다고 한다. 학회가 지원을 요청하면 기업체는 한정된 예산을 나누어 배분할 수밖에 없어 그만큼 지원금이 줄어들고 결국 모든 학회 재정이 열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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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화학회(American Chemical Society)는 1876년에 설립돼 2010년 현재 세계적으로 16만여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자산은 1조여 원으로 3000명 이상의 행정직원을 두고 있고 33개의 분과를 토대로 35종 이상의 저널을 발간하고 있다. 유사 학회로 분리하기보다는 분과를 두어 효율적으로 학회를 운영하고 있고 재정적으로도 건실하다.

이젠 논문의 양보다 질 고민할 때

한국연구재단에서 개발하고 있는 ‘한국형 SCI’, 즉 KCI(Korea Citation Index)는 양적이고 형식적인 부분에 치우쳐 있던 학술지 평가방식에 논문의 질적인 평가를 추가했다. SCI를 제공하는 톰슨 로이터사와 SCOPUS를 제공하는 엘스비어사도 KCI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들의 데이터베이스와 연계하기 위한 실무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들과의 연계가 완료되면 국내 우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전 세계 학자에게도 소개될 수 있고 국내 학술지의 국제적인 가독률을 높여 국내 학술지와 이를 발행하는 학회의 국제화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교수들이 학자적 양심을 걸고 나서야 할 때다. 이미 학계에서는 학회 난립과 그에 따라 수준 이하의 학술지가 양산되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교수들 스스로 유사 학회에 대한 통합 논의를 시작해야 하며 학술지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우리말로 쓰인 논문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교수들이 보여줘야 한다.

배영찬 한국연구재단 연구진흥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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