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유근형]‘한증막’ 8월 소년체전… 졸속행정에 멍든 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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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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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증막이 따로 없네.”

제39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하키경기가 열린 13일 대전 국제통상고 하키장에선 탄식이 이어졌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선수들의 화상을 예방하고 공이 잘 구를 수 있도록 경기 전 그라운드에 뿌려놓은 물이 거대한 수증기가 돼 올라온 탓이다. 육상경기가 열린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선 그늘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일어나는가 하면 경기장 주변엔 천막과 돗자리가 장사진을 이뤘다.

실내종목도 사정은 마찬가지. 탁구경기가 열린 서대전초체육관은 찜질방을 방불케 했다. 에어컨과 대형 선풍기가 동원됐지만 선수, 학부모, 시도 관계자 등 500여 명의 흐르는 땀방울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지난해까지 5월이나 6월에 열리던 소년체전이 올해 처음으로 8월에 열리면서 나타난 풍속도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이라는 명분 아래 체전을 방학 기간으로 옮겼다. 그러나 부작용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선수와 지도자는 물론이고 대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원성이 속출했다.

한 육상감독은 “오전에 단거리 예선, 오후에 결선을 치른다. 불볕더위에 체력 소모는 상상 이상이다. 목숨 걸고 운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록 경신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한 학부모는 “에어컨 밑에서 탁상공론한 결과다. 처음엔 태풍 때문에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돌아가는 것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을 방학으로 옮기면 폭염으로 인한 경기력 저하 외에 학기 중은 물론이고 오히려 방학까지도 운동에 얽매여 있게 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한 수영 지도자는 “평소에는 5월에 소년체전 다녀와서 7, 8월에 물장구치는 수준의 훈련만 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계속 운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애들이 흥미를 잃고 만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학교체육 정상화라는 정부의 큰 밑그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한체육회의 소년체전 홈페이지는 원성으로 도배가 된 상황이다. 8월 소년체전 개최가 명분도 실리도 챙기지 못한 졸속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실을 외면한 설익은 구호나 탁상행정은꿈나무들의 꿈을 꺾을 수 있다. 8월 찜질방 소년체전 현장에서 새 모토를 제대로 담아낼 세심한 준비 부족과 전략 부재가 아쉽게만 느껴졌다.

―대전에서

유근형 스포츠레저부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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