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해안포 무대응’ 청와대 뜻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2일 03시 00분


북한이 9일 서해로 발사한 해안포 110여 발 가운데 10여 발이 북방한계선(NLL) 이남 우리 해역으로 넘어왔는데도 우리 군(軍)은 즉각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후속조치를 담은 ‘5·24 대(對)국민 담화’에서 “(북한이)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을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올해 1월 북한이 NLL 북쪽 해상에 400여 발의 해안포를 쐈을 때도 군은 “해안포가 NLL을 침범하면 즉각 대응 사격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통령 담화와 군의 경고에서 언급한 ‘즉각 대응’은 이번에 침묵했다.

군은 북한에 세 차례의 경고통신을 보낸 것이 대응의 전부였다. 합참은 “우리의 경고통신 이후 북이 추가 발사를 하지 않아 대응사격을 자제한 것”이라며 “교전수칙에 따른 정상적인 대응”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우리 군의 경고를 받고 사격을 중단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북이 NLL 이남인 백령도 앞바다로 10여 발을 쏜 뒤에야 우리 군은 1차 경고통신을 보냈다. 북은 이미 연평도 쪽으로 방향을 돌려 100여 발을 쏘기 시작한 무렵이다. 우리 군이 2, 3차 경고통신을 보낸 뒤 북이 발사를 끝냈지만 우리의 경고가 위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군 당국은 해안포 발사 당일 저녁 “북한 해안포가 우리 해역으로 넘어온 것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이튿날 번복했다. 합참은 “종합 판단이 늦어졌을 뿐 숨기려 했던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NLL 이남으로 포탄이 떨어졌다는 백령도 초병의 육안 관측 결과를 의도적으로 감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군의 잘못된 대응의 배경에는 청와대 영향이 있었다는 군 관계자들의 전언(傳言)도 있다. 청와대는 부인하고 있지만 북한 해안포의 NLL 침범 사실을 보고받은 청와대 측이 “부정확한 육안 관측만으로 불필요한 긴장을 일으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확전 방지’라는 상부의 지침대로 움직이다가 해군 장병 6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은 2002년 제2 연평해전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른 신속한 대응은 북의 도발을 초기에 억제하는 데 목적이 있다. 북이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에 어떤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다. 치명적 결과를 막기 위한 사전 예방조치가 바로 단호하고도 즉각적인 대응이다. 우리가 무르게 보이면 북은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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