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설동훈]이역만리서 스러진 베트남 새댁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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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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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베트남 여성이 정신질환을 앓는 한국인 남편에게 구타당한 후 흉기로 피살된 사건이 발생했다. 숨진 여성은 남편의 정신질환을 전혀 알지 못했다. 국제결혼중개업자가 남편의 정신병력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정신질환자의 극단적 일탈행동이 빚은 비극이지만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 처지를 바꿔 베트남에서 한국 여성이 이런 일을 당했다면 우리 국민이 어떤 느낌을 가질지 생각해야 한다.

이 비극은 국제결혼중개업자가 결혼 희망자에 대한 검증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국제결혼중개 방식의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되었다. 국제결혼중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걸러내는 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신상정보조차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았다.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결혼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회는 국제결혼중개 시 중개업자로 하여금 결혼 당사자 간 주요 신상정보를 서면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고, 중개업자는 이용자와 결혼중개 상대방으로부터 혼인 경력·건강 상태·직업·범죄 경력을 제공받아 각각 상대방과 이용자에게 서면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4월 28일 통과시켰다. 이 법률은 11월 17일부터 시행된다.

개정 법률이 시행되면 이러한 비극은 재발하지 않을까? ‘그렇다’라고 확답하기 힘들다. 결혼 당사자의 신상정보를 확인하여 공증할 의무를 국제결혼중개업자에게 부여하는 것이 관건인데 강제할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의 국제결혼중개업자가 2008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직업과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한국인 남성을 동원하여 베트남 여성 26명과 위장결혼을 주선하여 한국에 입국시킨 후 성매매에 종사하도록 알선한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 국제결혼중개를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규제하는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범죄행위가 가능했다. 개정된 법률은 국제결혼중개업법의 규제 장치를 강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법의 규제를 피하려는 약삭빠른 국제결혼중개업자의 탈법 행위를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의 국제결혼중개업법은 사회적·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 중 일부에 대해서는 국제결혼을 알선할 수 없도록 규제한다. 대만의 국제결혼중개업법령은 비영리 사단법인 또는 재단법인만 국제결혼중개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참여를 배제한다. 두 나라에서 국제결혼중개업 종사자는 결혼 당사자 쌍방의 신상정보를 확인하고 공증해야 할 의무를 진다.

미국과 대만 의회가 강경한 조처를 취한 것은 일부 악덕 국제결혼중개업자가 공공의 안녕과 질서 또는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자국인이 국제결혼한 배우자를 부양할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경우, 외국인 배우자에게 국민의 배우자 사증을 발급하지 않는다. 그 나라 국제결혼중개업자는 직업과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자는 배우자 사증 발급이 거부될 것이 명백하므로 고객으로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중개업 제도와 운용 방식을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한국인 모두가 17만 결혼이민자와 배우자에게 애정 어린 관심을 갖고 이들과 소통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결혼이민자의 출신국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 동시에 질책할 일이 있을 경우에는 남의 가정사라고 방관하지 말고 지방자치단체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또는 사회복지기관에 연락하여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그것이 다문화사회에서 우리가 더불어 사는 길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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