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안덕근]‘WTO 모범국’ 한국의 역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4일 03시 00분


코멘트
2010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26일 개최된다. 토론토 회의에서 G20 정상이 합의하는 내용에 따라 11월 한국에서의 회의 방향을 정한다. 한국은 경제발전 경험을 기초로 개발협력 문제를 제시하고 무역자유화 진전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신규 의제로 추진할 예정이다.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한국은 실로 세계통상체제가 낳은 옥동자다.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1967년 한국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하면서 세계통상체제에 등장했다. 한국이 최초로 GATT 가입을 시도한 시기는 1950년이었다. 당시 정부대표단은 영국 토키에서 진행되던 3차 GATT 무역협상에 참석하여 가입협상을 완료했다. 그러나 6·25전쟁으로 국회비준 절차를 완료하지 못해 가입은 무산됐고 1967년에야 가입을 완료했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도 안 되는 외채투성이의 최빈국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무역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주목받는다.

세계통상체제에서의 기적 같은 성과 뒤에는 사실 드러나지 않은 면도 많다. 한국은 GATT 가입 직후부터 만성적인 외채와 국제수지 문제를 들어 수입제한 조치를 1990년까지 유지했고 국내 제조업의 주 경쟁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수입처다변화 제도를 통해 1999년 중반까지 차별적으로 수입을 제한했다.

그리고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계기로 모든 개도국 특혜관세대상에서 졸업했음에도 여전히 WTO 도하협상에서는 농산물시장 개방에 관한 개도국 특혜대우를 받기 위해 개도국임을 강변하는 실정이다. 더욱이 한국 정부의 이해가 크게 걸려있는 수산보조금 문제를 비농산물 협상에서 다루면서 이제는 농산물 분야뿐만 아니라 비농산물 분야에서까지 개도국임을 입증하느라 수모를 겪고 있다.

10대 교역국에 세계가 거는 기대

WTO 체제에서 한국의 위상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다. WTO를 창설한 계기가 된 우루과이라운드는 사실 코리아라운드 또는 서울라운드가 될 예정이었다. 당시 제네바에서는 GATT 체제를 질적으로 변혁할 무역협상을 한국이 개최하는 데 전폭적으로 합의했다. 무역으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이 서비스, 지적재산권 보호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국제무역협상을 출범시키는 상징적인 기회에 모든 회원국이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1985년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 총회에 이어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유치했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고사하는 바람에 우루과이가 세계 경제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됐다.

이번 토론토 G20 정상회의에서는 답보상태인 도하협상을 진전시키는 실질적인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특히 한국에서 개최하는 11월의 G20 정상회의는 내년 10주년을 맞는 도하협상을 종결하는 결정적인 모멘텀을 제공해야 한다. 2012년 미국 인도 한국 등 주요국의 대선과 총선 등 정치일정이 집중된 점을 감안하면 11월 G20 회의에서 한국의 역할은 2011년 도하협상을 종료할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 큰 파장을 몰고 온 광우병 사태와 지난 지방선거에서의 여권 참패로 국내 정치여건이 취약하지만 G20 정상회의에서의 선도적 역할을 발판삼아 도하협상을 타결해야 하는 내년 WTO 각료회의 유치를 위해 나서야 한다. 이어 WTO 최초의 무역협상을 성공적으로 종결한 후 다음 해 새로 선출하는 WTO 사무총장직에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한국이 어느 분야보다 전문성이 있는 영역에서 국격을 신장하는 방안이다. 세계통상체제에서의 특혜를 독차지하여 경제발전을 이뤄내서 시기와 질시를 받는 한국이 시장개방 문제만 나오면 길거리에서부터 국회 한복판까지 무법천지로 돌변하여 웃음거리가 되는 현실을 이제는 고쳐나가야 한다.

11월 G20 서울회의 족적 남기길

1950년 GATT 가입협상이 무위로 돌아간 4년 후 한국은 스위스에서 개최된 월드컵에 코치 1명과 선수 11명만 가까스로 보냈다. 이미 경기 개막 이틀 후이고 경기 시작 불과 22시간 전에 도착한 선수단은 최강 헝가리를 상대로 치른 최초의 월드컵 경기에서 0―9의 참패를 겪는다. 온갖 악조건 속에서 사투를 벌이다 4명의 선수가 쥐가 나서 실려 나가고 7명으로 상대한 경기 결과였다.

그렇게 우습던 국가가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고 4강 기적을 이뤘다. 1950년 독립국이라는 인정이라도 받아보려고 시도했던 가입협상이 좌절된 후 6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WTO에서 모두가 부러워하는 모범 회원국으로 입지를 확고히 했다. G20 정상회의를 발판으로 세계통상체제에서 국격을 일신하는 적극적인 통상전략을 바란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