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영백]‘과학비즈니스벨트’ 정치흥정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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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 흔들리는 ‘특별법 국회통과’
기초과학 미래 위해 이달중 처리를

6·2지방선거로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이후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에 맡겨져 부결 처리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1월 발표된 세종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구축 종합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과학기술계, 특히 기초과학계는 자괴감과 함께 이공계 홀대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이래서야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과학기술 분야로 진출하기를 원할 것이며, 또 몇십 년 후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어떻게 될지 걱정스럽다.

이미 잘 알려졌지만 선진국은 각종 정치 논리 속에서도 실리적으로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왜 한국에서는 과학기술계에 꼭 필요하고 미래 국가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요한 사업이 지방선거 결과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만큼은 가장 비(非) 정치적인 추진이 필요하며 정치권과 정부가 국가의 미래와 과학기술계를 위해 정치와 별개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더라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은 여야가 하나 되어 반드시 통과시키고, 주무부서인 교육과학기술부 등은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기 위해 필요하면 설치 지역을 조속히 공모하는 등 후속 처리를 서둘러야 한다. 이미 이 사업은 정치권에 볼모로 잡혀 2015년 완공이라는 목표에 크게 늦어진 상태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내에 설치할 계획인 기초과학연구원도 그 성격이 변질되는 일 없이 국가 기초과학만을 생각해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 특히 연구원과 함께 설치하기로 한 중이온가속기를 포괄할 수 있는 물리과학을 중심으로 중점연구 분야도 조속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의 진보를 뒷받침하는 것은 탄탄한 기초과학이다. 한국이 주요 20개국(G20)을 넘어 세계 주요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노벨상 수상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초과학 수준이 담보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초과학보다는 단기적인 성과를 보인 응용과학 및 기술 육성에 힘을 쏟았다. 응용과학 중심의 정책 집중은 한국이 현재의 수준으로 도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한계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기초과학 강국이 되려면 장기적인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모든 과학강국은 국가적으로 기초과학 연구를 육성 및 지원하고 있다.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영국의 캐번디시 연구소,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등 선진국 국립연구소가 대표적 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한국은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국가 연구기관이 전무한 실정이다. 비슷한 취지로 설립된 정부 출연 연구소는 기초과학보다는 공학 및 융·복합을 포함한 응용 관련 연구에 중심을 두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의 설립은 국가 도약에 필수적인 기초과학의 중심이 한국에 자리 잡는 호기임이 분명하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의 국회통과가 1년가량 늦어지면서 사업 1단계 예산조차 2010년 국가예산에 반영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당장 과학비즈니스벨트의 핵심 사업인 기초과학연구원의 준공 시기가 연기되고 있다. 우선 특별법의 통과와 사업 예산을 조속히 반영해 국가 기초과학이 정치 싸움에 제자리걸음을 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세종시 수정안 처리와 무관하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을 6월 중 통과시킬 것을 여야 정치권에 간곡히 호소한다. 아울러 신속한 사업 추진에서 과학계의 의견을 더욱 존중해주길 바란다. 정부도 과학기술계 등 각계각층의 더욱 큰 지지를 끌어내는 노력과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영백 한국물리학회장 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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