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로스 두댓]‘십자군왕국’ 닮아가는 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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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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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가자지구 봉쇄작전 중 유혈사태를 벌인 것을 보고 ‘십자군왕국’이 떠올랐다. 이는 중세시대에 십자군이 성지(聖地) 원정을 통해 세운 나라다. 안티오키아공국, 에데사와 트리폴리백작령, 예루살렘왕국 등을 일컫는 말이다.

이스라엘과 십자군왕국의 유사성은 아랍세계에서는 곧잘 인용된다. ‘유대인과 십자군’은 오사마 빈라덴이 즐겨 쓰는 관용어이며 팔레스타인 강경파들은 십자군을 패퇴시켰던 아랍의 살라딘 장군이 다시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십자군왕국의 흥망에서 배워야 할 게 있다. 현재 이스라엘이나 십자군왕국 모두 호전적 적국에 둘러싸인 소국이다. 동맹국은 멀리 있고 적들은 곁에 있다. 둘 다 중동에 있지만 서구를 지향하며 전 세계에서 광적인 신도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십자군왕국의 패망 원인이 된 문제들을 이스라엘도 직면하고 있다.

첫 번째는 지리적 이유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성지는 끊임없는 침략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정복하긴 쉬워도 방어하긴 힘들다. 두 번째는 외교적 문제다. 십자군은 이웃의 강국 동로마제국 및 이집트와 마찰을 빚었으며 서구 유럽으로부터 받는 지원은 너무도 미약했다. 세 번째는 인구학적 요인이다. 십자군왕국의 지배계급은 서유럽 출신 기사로 소수인 반면 주민 대부분은 동유럽 정교회나 이슬람 신도였기 때문에 통합과 안정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10년 전 평화협상이 중단되기 전 이스라엘은 세 분야에서 십자군왕국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과 핵 억지력으로 지리적 취약성을 극복했다. 또 터키 요르단 이집트 등 지역 내 강국들과도 비교적 안정된 관계를 맺어왔으며 슈퍼파워인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자국 내 아랍계 소수민족들은 중동의 어느 나라 소수민족보다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사회통합이 잘 이뤄졌다. 그리고 이스라엘인들은 주민의 대부분이 아랍계인 가자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지구에서 철수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0년이 흐른 지금 군사적 이점을 제외하고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나 인구학적으로 점점 더 12세기 예루살렘왕국을 닮아가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과 레바논 전쟁, 가자지구 봉쇄작전 실패로 세계무대에서 고립됐다. 또 요르단 강 서안의 아랍계 주민은 급속히 늘어나 유대인이 소수가 되고 있다.

미국의 지지를 받는 한 이스라엘은 외교적 고립에서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국 내 인구 구성의 변화는 큰 문제다.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와 유사한 정책을 통한 장기 점령을 택하든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이스라엘 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넓히는 방안이다.

물론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에서 철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영토와 안전 측면에서 큰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또 요르단 강 서안에서의 일방적인 철수는 2005년 가자지구 철수보다 훨씬 더 꼬인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 정파 간의 심각한 폭력사태를 부를 수 있고 이들의 배후 지원세력인 이란과 시리아에 전쟁 구실을 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생존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은 요르단 강 서안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십자군왕국은 최후에 이슬람 적군들에게 패망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이 붕괴된다면 내부로부터 무너질 것이다.

로스 두댓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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