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종선]욕심 내야 할 소중한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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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특별한 것은 없다. 단지 내가 그렇게 여기면 특별하게 된다. 시인 김춘수 님이 오래전 노래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많은 미술품과 음악 중에서 내게 와 닿고 소중한 것이 제각각이다. 책 한 권과 컵 하나가 그렇다.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그러하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잘나서도 아니고 나를 지독히 아껴서도 아니다. 내가 그를 특별히 여기는 마음 때문에 더 없이 중요한 존재가 된다.

특별한 날이 유독 많은 5월의 어느 날 모친이 말씀하신다. “평소가 중요하지. 이 하루 그냥 넘겨도 된다.” 당연한 말씀이다. 그래도 특별한 날은 소중하다. 그날은 조금 더 특별하고 싶은 게 자식의 마음이다. 한 다발의 꽃바구니는 아니더라도 한 송이 꽃을 내밀기에 쑥스럽지 않도록 나라가 도와준 날이다. 아주 잠깐 동안 지친 아버지를 껴안아도 “와 이라노?”라는 소리 듣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난초(蘭草) 두 분(盆)을 정성스레 키우다가 무소유의 역리를 깨우쳐주시던 분이 멀리 가신 지 두 달이 넘어버렸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다 가져버리셨음이 결국 그의 가르침이려니 싶다. 그 후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무소유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분명 그가 그러했듯 세상을 이롭게 할 것은 흔들림 없이 갖고 살아야 한다.

현인들이 멀리하려 한 소유의 덫


그분 역시 무엇에 마음이 매여 집착하다가 괴롭지 말라는 것이지 무조건 갖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었으리라. 욕심으로 더 가지려 하지 말라는 말이지 소중한 것까지 다 잊으라는 말은 아니었으리라. 우리를 끝내 외면하지 않고 절제된 생활과 생각을 고수하며 남겼던 가르침처럼 말이다. 최선이라는 말에서 ‘선’자가 우선 선(先)이 아닌 착할 선(善)이기에 그러하다. 세인이 넙죽 받아버릴 세상의 유혹을 뿌리친 삶을 어리석음이 아닌 최선이었음으로 인정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나는 각자가 의미를 두는 어느 날도 다 소중하다고 본다. 개인의 사소한 역사 속의 사진 한 장 한 장이 있는 앨범이 어느 기록 사진전 못지않게 소중하니 잘 간직하길 바란다. 빛바랜 어머니의 반지 하나는 물론이거니와 MP3에 수록된 좋아하는 노래도, 용기와 희망을 주던 친구의 e메일도 다 간직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간디가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고 하였더라도 그가 말한 것은 갖지 않아도 되는 ‘또 하나 더’의 욕심이지 않았을까. 떠나도 괜찮은 정도의 사랑 따위로 남을 울리지 말며 사랑한다고 그와의 이별 후 생을 정리할 만큼 무엇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범죄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까.

50대 중반의 어느 회장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잃을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내가 제안했다. 무엇을 잃을까 걱정인지, 그걸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잃으면 절대 안 되는 것과 잃어도 되는 것을 적어 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만난 그는 평온해 보였다. 적어보니 별것 없더라는 게 이유란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던 욕심을 벗어나니 잃어도 그만인 것이 더 많더라고 한다.

한쪽 신발을 잃어버리고는 나머지 한쪽 신발을 던지며 누군가 제대로 된 짝 맞는 신발을 나 대신 신는다면 그걸로 됐다고 여기던 인도의 그분 마음이면 불안함도 억울함도 없다. 세상에 다친 마음을 추스르며 때로는 울며 쓴 내 책인데 누군가가 용기를 얻었고 힘이 났다는 친서를 받는 행복도 어느새 그분들이 준 가르침이다. 평범한 우리에게 무소유나 특별함은 그렇게 좀 다르다.

노모의 창가에 둘 화분이 흉일까


가족을 입맛 나게 하려고 어느 주부가 세일 창고를 뒤져 산 새 그릇은 더 가지려는 욕심이 아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위한 봄맞이로 창가에 놓아드리려 사는 꽃 화분 하나는 흉일 수 없다. 법정 스님의 난(蘭)을 들먹이며 혀를 찰 일이 아니다. 시설의 여러 아이들에게 보낼 선물인지도 모른 채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수십 벌의 아동복을 사는 이에게 섣불리 찌푸리는 눈살은 교만이다.

세상 이치와 인간사 가르침을 우리에게 남기신 특별한 분에게 받은 교훈을 잊지 말고 삶을 정화해 나가야 한다. 우리는 그냥 보통 사람이다. 무소유를 핑계 삼아 오히려 소중한 것에 나태해도 되는 오늘이 아니다. 세상의 무엇에 대한 소유 여부보다는 왜 가졌는지, 어디에 쓸지가 중요하다. 그것만 최선(最善)이면 얼마큼을 가졌어도 부끄럽지 않다. 속물 취급 안 당해도 된다. 무엇을 특별히 여기더라도 당당해도 된다. 아니, 특별히 여기는 무언가가 우리에게는 하나쯤 있어야 산다.

이종선 이미지디자인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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