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정훈]우리의 虛, 정보-경계-작전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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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9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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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밤 백령도 서남쪽 1.8km 해상에서 발해만 쪽(북서 방향)으로 6.3노트로 서행하던 천안함이 왼쪽에서 다가온 공격을 받고 두 동강 난 사건을 군사적 관점에서 분석해보자. 대(對)잠수함 작전 시 수상함(水上艦)은 가스터빈을 켜 15노트 이상으로 고속 항진한다. 가스터빈을 켜면 어뢰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고 디젤엔진을 켰을 때보다도 물속 소음이 작아져, 적 잠수함의 탐지를 피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날 밤 천안함은 이런 기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에서 우리 함정을 위협하는 북한군 지상 무기는 지대함 미사일과 해안포다. 천안함이 지나던 곳은 북 지대함 미사일과 해안포용 레이더파가 도달하지 못하는 ‘섬 그늘’이다. 근무자를 제외한 천안함 승조원들은 쉬거나 취침하려고 했다. 백령도와 가까워 일부 승조원들은 휴대전화 통화도 했다. 그러다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이는 어뢰 공격을 받은 것으로 나는 추론한다.

북한은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는 잠수함정을 운용하고, 얕은 서해에선 경비정과 반잠수정을 움직인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동해에서는 조선인민군 정찰국이 잠수함정을 이용해 침투하고, 서해에서는 NLL을 무력화하기 위해 해군이 경비정을 보내거나 조선노동당 작전부가 반잠수정으로 공작원을 침투시키는 것이 지금까지의 도발 방식이었다.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한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 군에 통용돼 온 이러한 인식을 교묘하게 역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천안함 침몰 후 49km 후방에 있다가 NLL까지 달려간 속초함은 42노트로 북상하는 물체를 발견해 135발의 함포를 쏘았다. 군은 반잠수정이 천안함을 공격하고 부상해 42노트로 달아나는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물체는 반잠수정이 다닐 수 없는 육지인 장산곶에서도 달리다가 사라졌다. 해군은 새떼라고 발표했다. 뒤늦게 해군은 링스헬기를 띄워 잠수함정을 찾는 작전을 벌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천안함과 같은 작은 수상함은 잠수함 탐지 능력에 한계가 있어 ‘적 잠수함정이 기동에 나섰으니 주의하라’는 정보를 받지 못하면 대잠 경계작전을 하기 어렵다. 2002년 제2연평해전 직전에는 한철용 소장이 이끄는 ○○○부대가 통신 감청을 통해 북한 해군의 NLL 도발을 예측해 상부에 보고했으나 무시당했고, 그 결과 참수리 고속정 357호가 기습을 받아 침몰했다. 이번엔 이와 비슷한 예측도 없었다.

인간(스파이)정보와 영상정보를 담당하는 ○○사령부와 신호정보를 다루는 ○○○부대, 국방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생산하는 국방정보본부,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 정보를 다루는 국가정보원 중 어느 한 곳이라도 확실하게 제 역할을 했다면 천안함이 저렇게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은 한마디로 정보의 실패와, 이 실패에서 비롯된 경계의 실패, 작전의 실패가 결합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6·25전쟁 발발 이틀 전인 1950년 6월 23일 밤 12시 육군은 비상경계령을 해제했다. 채병덕 육군 총참모장은 6월 24일 밤부터 다음 날 오전 2시까지 술을 마시고 취해 잠들었다가 전쟁을 맞았다. 정보의 실패, 경계의 실패, 작전의 실패로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맞은 것이다. 6·25전쟁 발발 60주년의 날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3·26 천안함 폭침은 6·25 이후 우리 군함이 직접 공격당해 최대의 피해를 본 사건이다.

이정훈 논설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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