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지평]흘려듣지 못할 ‘일본식 불황’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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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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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가 1980년대 후반의 일본과 같이 버블 붕괴, 장기불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 최대의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은 현재의 한국경제가 △외부 충격에 따른 위기를 겪은 후의 빠른 회복 △소비자 물가의 안정 △저금리 장기화로 인한 과잉유동성 발생의 측면에서 과거의 일본경제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1980년대 당시의 일본은 지나친 낙관론을 바탕으로 부동산 불패신화가 팽배했다는 측면에서 현재의 한국과 다른 점도 있지만 당시의 일본과 유사한 점도 많음을 고려하면 이런 경고를 그냥 흘려보낼 수 없다. 일본의 사례를 교훈 삼아 위기를 피해야 한다.

과잉유동성, 금리로만은 못 풀어

거시경제 측면에서 보면 과잉유동성의 팽창과 투기심리의 고조를 억제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1980년대의 일본을 비롯한 모든 버블은 금융의 지나친 완화 속에 자산에 대한 비합리적인 기대가 형성되면서 발생했다. 자산 가격 상승 초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근거가 있으나 자산의 수익이 아니라 자산 가격의 상승 자체에 대한 기대가 자산 수요를 확대시키고 계속적으로 투기 참여자가 늘어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자산 가격 급등 현상이 발생한다.

반대로 자산 시장에 대한 지나친 비관론도 일본의 장기불황 과정에서 문제가 됐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도 인구 고령화로 10년 후에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리라 예상하고, 그 이전에 부동산을 매각하자는 행동이 계속 앞당겨질 경우 비합리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분야에서 쏠림 현상이 심하게 발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런 위험성을 가진 집단심리를 억제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 분석 전문가의 노력과 활발한 토론이 필요하다. 경제 환경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소수 의견을 존중하면서 금융시장, 자산시장의 급등락을 피할 수 있는 성숙된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버블의 기초가 되는 과잉유동성은 단순히 저금리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도 유의해서 대비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경제의 성숙화와 함께 대기업의 투자 수요가 둔화되고 경제 전체적으로 여유자금이 확대돼 금융기관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는 데 고민하는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에 매진했다. 성장률을 급락시켜서 과잉저축의 발생을 억제하는 일본의 장기불황형 해결 패턴이 있으나 이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새롭고 건전한 투자처를 개척하거나 이것이 충분치 않으면 과잉자금을 해외로 투자하여 안정적으로 해외 투자 수익을 확보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건전한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과잉유동성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해외투자가가 우리나라 국채시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서 더욱 불안정한 상황이다. 과잉유동성의 압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단기 투기성 해외자금의 유입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국내에 유입되는 해외 투기성 자금에 대한 과세제도의 강화, 세밀한 자본 유입 규칙을 적절히 혼합한 시스템을 통해 해외 투기자금의 유입으로 인한 자산 버블의 가능성을 억제할 수 있다.

건전한 투자처 찾아내 흡수해야

근본적으로는 건전한 투자처를 개척하는 일이 중요하다. 검증이 안 되지만 성장 가능성이 있는 창업기의 기업이나 중견·중소기업, 1인기업을 발굴하여 육성하는 금융 중개 기능의 첨단화가 요구된다. 기업도 기존의 제품이나 사업에 안주할 경우 인구 고령화, 경제의 성숙화, 신흥국 기업의 부상에 따라 시장 성장의 한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제품의 진화, 새로운 서비스 및 솔루션의 개발, 산업의 그린화 및 정보기술(IT)화에 대응한 새로운 비즈니스 개척에 매진해야 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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