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녕]‘쓰레기 같은 법’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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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5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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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회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시 국회의원의 당선을 무효로 하는 처벌의 하한선을 현행 벌금형 1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느슨하게 고치려다 여론의 질타를 받고 물러섰다. 물가도 많이 올랐는데 고작 벌금형 100만 원에 국회의원직을 빼앗는다니, 너무 심하다는 논리도 일견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하한선을 300만 원으로 올린다면 과연 의원직 상실이 줄어들까. 천만의 말씀이다. 법원이 80만 원이나 150만 원의 벌금형을 때려온 것은 100만 원을 기준으로 당선무효냐, 아니냐를 가리기 위한 것이지 꼭 그 액수만큼의 죄를 지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법률상 의원직 상실의 기준이 300만 원으로 올라가면 법관들은 거기에 맞춰 선고 벌금액을 조정할 것이다. 공연히 집단이기주의 속내만 드러냈을 뿐, 실속 없는 법개정 시도였다.

우리 국회의원들은 전반적으로 법 만드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18대 국회 들어 이달 12일까지 발의된 법안은 모두 7430건이다. 이 중 의원 발의 법안이 6456건(87%)이니 의원 1명당 평균 22건씩 발의한 셈이다. 언뜻 보면 의원들이 참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의원 발의 법안 중 가결 처리된 것은 10.5%인 681건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폐기(1174건), 철회(432건), 부결(2건)됐거나 계류(4167건) 중이다. 계류 법안이 이렇게 많으니 국회가 처리에 늑장을 부리고 있는 걸로 생각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태반은 처리될 수 없거나, 처리돼서는 안 되거나, 다른 법안과 중복되는 이른바 ‘정크(쓰레기) 법안’들이라고 국회 관계자는 말한다.

누가 법안을 발의하면 아이디어를 비슷하게 베껴 다른 이름의 법안을 내는 ‘표절 법안’도 허다하다. 보험 관련법만 해도 비슷한 내용의 개정안이 20여 개나 발의돼 있다. 시행령에 있는 내용을 법안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시민단체들의 평가 항목에 법안 발의 건수가 들어가니 일단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법안 발의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 통과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규제 조항을 잔뜩 집어넣은 법안을 발의해 이를 삭제하려는 이해관계자들의 로비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른바 ‘법안 장사’다.

구멍이 숭숭 뚫린 법안이 가결 처리된 뒤 시행할 때쯤에야 허점이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비정규직법처럼 여야 간 정쟁 탓에 기형적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있다. 미처 다른 법과의 관계를 제대로 따지지 못해 실효성이 없는 것들도 있다. 법이 법치의 무게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상임위 차원에서는 그럭저럭 논의를 한다지만 다른 의원들은 내용도 모른 채 표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오죽했으면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경우 그 내용을 개의 24시간 전까지 모든 의원에게 통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까지 발의됐겠는가.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이 13일 “의원 발의 법안도 정부 입법안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입법예고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법은 건축물의 설계도나 전자장치의 프로그램과 같은 것이어서 잘못 만들면 붕괴나 오작동을 초래한다. 국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결에 앞서 법안의 이모저모를 꼼꼼히 따질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본분은 ‘좋은 법’을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최고의 정치요, 자신을 뽑아준 국민에 대한 도리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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