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영혜]뒤처리 오리무중인 개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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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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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읽던 동화는 ‘왕자님과 공주님이 만나 그 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면서 끝을 맺곤 했다. 인생을 이만큼 살아보니, 두 사람이 만난 뒤 참으로 다양한 스토리, 예기치 않은 곡절과 난관도 많음을 아는데 으레 동화는 그냥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두루뭉술하게 덮고는 그 이후를 따지지 않는다. 우리는 또 좋지 않은 감정에 부르르 화를 냈다가도 곧 잊어버리는 사람을 ‘뒤끝 없다’고 표현한다. 일단 앞뒤 가리지 않고 상대를 구박하거나 무안을 주더라도 이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뒤끝은 없다며 장점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제도가 새로 생길 때에는 말도 많다가 한번 시행되고 나면 별로 그 뒤를 재거나 따지지 않는 것을 본다. 예를 들면 혼잡통행료가 있다. 시내의 혼잡을 덜겠다며 잘 다니던 남산터널을 갑자기 가로막고 혼잡통행료 2000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로 그 통행료가 얼마가 걷혀 어떻게 쓰이는지, 그로 인해 혼잡은 덜었는지, 혼잡이 해소되면 예전처럼 자유통행이 가능한지 알 길이 없다.

쓰레기 종량제를 한다며 등장한 규격봉투 값이나 상점에서 비닐백을 써야 할 때 내는 요금도 그렇다. 그 돈이 환경보호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른다. 승용차요일제도 석유 값 인상 때문에 실시한다더니 별 설명도 없이 계속된다. 신문의 미담란을 장식하는 각종 기부금과 성금도 그 이후의 쓰임새가 궁금하다. 세금폭탄이라며 느닷없이 등장했던 종합부동산세, 거액의 벌금이나 과징금, 어느 날 갑자기 도로에 줄 긋고 오후 10시까지 받는 주차료 등 갑자기 늘어난 수입은 어디에 들어가고 늘 예산이 부족한지 모르겠다. 뒤끝 있게 따지는 이가 없어서인지 그 후의 스토리가 없다.

취지 살렸나 알 수 없는 새 정책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요란하게 등장한 제도들도 나중에는 원래 도입 당시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법조의 소수 엘리트주의 폐해를 덜고 많은 국민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법률 서비스를 확대한다며 등장한 로스쿨이 있다. 사법개혁을 위해선 로스쿨만이 살길인 것처럼 분위기를 몰아가더니 정작 생기고 보니 학비가 엄청나다. 누구나 볼 수 있던 사법고시와 달리, 없는 이는 로스쿨에 접근조차 어렵다. 왜 사법개혁의 시급한 과제가 로스쿨이었는지 이제 와서 따지지도 않는다.

이상하기는 공직자 재산심사제만 한 것도 없다. 이는 공직을 이용해 부정하게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문제 삼으려 만든 제도다. 수많은 공직자들은 매년 초 복잡한 재산등록을 하느라 애쓰고, 엄청난 예산과 인원이 동원되어 이를 심사한다. 그동안의 재산심사는 공직에 있는 동안 재산이 얼마나 늘었으며 그 이유는 타당한지보다는, 가진 재산 액수를 사실대로 신고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작 재직기간에 터무니없이 재산을 축적한 이가 있어도 자기 재산 명세를 성실하게 신고하면 불법의 증거가 없는 한 징계도 어렵다고 한다.

최근엔 문제가 된 단독판사들의 무죄 판결을 계기로 사법개혁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소장판사의 경륜 부족, 단독판사들의 성향이나 법원 내부의 사조직 등이 비판의 대상으로 등장한다. 사실 이러한 비판은 전에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사법부 내부에서는 개혁의 초점을 이쪽에 맞추기보다는 국민참여재판제도, 구술변론주의, 공판중심주의 등 민형사법 원론적인 면에 치중했다. 더구나 그 제도들은 현실적으로 법관의 재판 부담을 엄청나게 가중시켜서 ‘내 사건이 충실히 검토될 수 있을까’ 하는 국민의 걱정으로 돌아왔다.

사실 개혁이나 그 뒷마무리를 따질 것도 없이 있는 제도의 활용으로 해결될 수 있는 일이 많다. 이번의 재판 사건들만 해도 단독판사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사회의 이슈가 되고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사건이라면 법에 마련되어 있는 합의재판 회부 결정을 거쳐 합의부에서 신중하게 심리하는 것도 한 방법이었다.

여론에 밀려 옥상옥 쌓지 말아야

그런데 마침 이들 사건이 제소되기 직전에 신영철 대법관 사건으로 사법행정권의 남용이니 사법권 독립의 침해니 하며 우르르 여론이 들끓었던 터라 또 무슨 소리 듣기 싫어 이 방법을 포기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학대라는 말이 있다. 전관이 선임한 사건은 봐줬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아예 더 불리하게 판결한다는 것이다. 여론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재판의 화두가 새삼 제기되는 대목이다. 판결 비판에 대한 대응은 ‘그 판결은 정당하다’가 돼야지, 사법권의 독립이나 상소심의 존재 뒤로 숨는 것이 답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재판은 사전에 여론으로부터도 독립해야 하는 것이지, 사후에 비판으로부터만 독립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김영혜 객원논설위원·변호사 yhk888@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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