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택균]정치논쟁 자초한 영진위의 영상미디어센터 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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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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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리를 가려 하는 사람은 전날 밤에 방아를 찧는다.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 달 양식을 미리 모아 둔다.”

장자(莊子)의 말이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 5층 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영화진흥위원회 기자간담회는 천 리를 가야 함을 알고도 전날 밤에 부랴부랴 양식을 마련하려 한 게으름의 대가를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간담회는 사흘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독립영화 감독과 제작자 50여 명의 영진위 비판 기자회견에 대한 해명을 위해 열렸다. 지난달 25일 영진위가 발표한 ‘영상미디어센터 지원사업’ 위탁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이들은 “심사 과정에 공정성이 결여됐다”고 주장했다.

영상미디어센터는 2002년부터 일반인을 대상으로 촬영 편집 등 영화 제작 기술을 가르치고 기자재를 지원하는 교육활동을 펼쳐 왔다. 영진위가 사업자로 지정한 한국독립영화협회는 ‘미디액트’라는 명칭으로 8년간 센터를 운영했다. 하지만 이 협회는 2009년 감사원으로부터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집행했다”는 지적과 함께 2797만 원 환수 조치를 받았다. 이에 앞선 2008년 국정감사에서 영진위는 ‘특정 단체에 기금이 편중 지원되지 않도록 개선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적을 받았다. 조희문 영진위원장은 “사업자 선정 방식을 ‘지정’에서 ‘공모’로 바꾼 것은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진위는 2009년 11월 27일부터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후보 신청을 받아 12월 16일 심사했다. 그러나 적당한 운영자가 없어 재공모하고 지난달 22일 재심사했다. 사업자로 선정된 ‘시민영상문화기구’ 이사장은 장원재 전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다.

영진위에 대한 비판의 요지는 “심사 과정에서 공정성을 무시하고 정략적 계산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지난달 만들어진 시민영상문화기구는 이제야 실무 직원을 모집하고 있는 부실 단체”라는 비판도 있다. 전 미디액트 운영진이 공모를 위해 지난해 10월 새로 구성한 ‘한국영상미디어교육협회’는 심사에서 탈락했다.

지원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해 감사원 지적을 받은 주체에 사업을 계속 맡길 수 없었다는 영진위의 설명은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 상반기 결정된 사업자 공모를 뒤늦게 진행해 ‘예견된 논란’을 초래한 책임은 면하기 어렵다. “후보 역량이 전반적으로 부족했지만 예산 집행을 더 미룰 수 없었다”는 조 위원장의 해명은 적절하지 않다. 사업자의 객관적 역량이 충분했다면 ‘정치색’ 논쟁은 처음부터 필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택균 문화부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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