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용희]당신만의 수상 소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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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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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됐다. 남편이 금연을 하겠다고 또 설치는 걸 보니. 새해는 새해인가 보다. 새해엔 저마다 목표와 계획을 세운다. 금연이든 다이어트든,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습관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새해에 버리고 싶은 다섯 가지, 뱃살, 빚, 지각하는 습관, 야식, 양다리 걸치는 남친….

뻔한 감사로 막내리는 TV속 연말

새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뭐 달라진 건 없다. 똑같은 반복이 이어질 뿐. 새로운 시간의 방문을 새로운 의미로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희망만이 신년을 축하한다. “새해 복 많이….” 새로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신념이 없다면 시간의 순환도 별 의미가 없는 반복에 불과하다. 일신 우일신(日新 又日新)하고자 하는 꿈, 인간이 그래서 희망인가 보다.

신년에 바라는 사람의 꿈은 대개 그렇듯 비슷하다. 더 나은 살림살이와 건강이다. 텔레비전은 신년에 예상되는 한국 경제상황, 주식, 부동산, 그리고 신년 건강 특집을 내보낸다. 작년 말 텔레비전은 방송국 연기대상으로 가는 해를 마감했다. 그러니까 텔레비전의 1년은 한 해 예상되는 경제 상황에서 시작해서 연예인 방송 대상으로 끝을 맺는다. 카운트다운을 외치면서. 1년간 우리가 세웠던 꿈 목표 계획의 연말 결산을 연예인의 시상식이 해주는 셈이다.

연말에 나도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그건 연말 환상의 절정이다. 레드 카펫 위 배우의 의상, 화장, 손짓에서 미소까지. 에지 있는 발걸음과 표정은 어떤 압도되는 것에 대한 숭배를 이끌어내는 듯했다. 나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듯 그들의 모든 제스처와 미소를 벙긋벙긋 웃으며 바라보았다. 스타는 누추한 현실을 잊게 하니까. 잃어버린 내 안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니까. 굳이 멋진 레스토랑에서 갓 구운 뉴욕스테이크를 썰지 않더라도 그들의 미소 ‘한 방’이면 모든 것은 오케이. 시상식을 위한 배우의 드레스와 액세서리, 화장, 머리 손질에 들어가는 돈만 해도 몇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무대 위에 호명된 수상자의 수상 소감을 듣고 정말 따분하기 이를 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상자는 대부분 감격에 겨워 무대로 올라간다.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그리고 말한다. 이 작품을 만나게 해 준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동료배우와 스태프, 가족에게 감사하다고.

그 자리가 누군가에게 끝없이 감사를 표할 자리인 것만은 사실이다. 상을 받은 자의 겸양의 표시이자 순수한 인간적 예의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렇게 감사의 상찬만 늘어놓는 걸 보고 있으면 팥 없는 찐빵을 먹은 듯 허전한 느낌이 든다. 작품을 만든 이들과 동료에게 감사를 하려 한다면 굳이 시청자 앞에 나설 이유가 없다. 그들끼리의 잔치로 인사하고 끝내도 된다.

시 한 소절이 한해의 횃불이 되길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수상의 순간에도 배우가 대사를 외우듯 뭔가 성의 있는 준비를 했어야 한다는 점이 아니다. 그러니까 단 한마디. 어떤 뭐랄까, 그 순간만은 스크린 속의 배우가 아닌 배우의 진짜 내면을 보고 싶다. 배우 인생을 사는 자들이 갖는 삶과 연기에 대한 철학이라고 해도 좋겠다. 인생과 연기에 대한 단 한마디 촌철살인의 말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런 말을 듣는다면 배우는 자신을 연기기술자 정도로 보느냐고 기분 나빠할지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없다. 우리는 때로 낭만적 우상에게 삶을 기대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제임스 딘 같은 저항하는 청춘에게 하듯 말이다.

삶에서 추구하는 가치나 철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요즘 들어 더하다. 와인 클래스에 회사원이 북적대고 뮤지컬에 연속매진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 고급 문화행사가 대개는 기업 영업을 위한 매개와 연결된다. 외국 바이어를 만날 때 와인에 대한 상식, 식사 에티켓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화 행사, 문화 향수마저 경제제일주의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외국 회사에 면접을 보던 남성이 취미가 뭐냐는 외국인 면접관의 말에 영시를 암송하는 거라고 말했다. 면접관은 잠깐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리곤 한번 외워보라고 했다. 그는 평소 즐기던 영시를 암송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삶은 영시 암송대회가 아니다. 하지만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정신적 가치, 영혼과 내면을 키워내는 명구 하나, 철학적 사유 한 줄기 정도는 떠올려 봄 직하지 않을까. 나를 이끌고 있는 내면의 시 한 줄, 영혼을 울리는 명구 하나 정도를 생각해본다.

자기계발서의 제목이 보여주는 승자제일주의의 시대, 처세술과 자격증, 토플점수의 시대다. 매년 같은 수상소감, 감사의 말. 연말이면 매년 똑같은 ‘성탄 특선 영화’처럼 너무 뻔하다. 세상이 내게 상 하나 안 줘도, 굳이 무대에 올라가지 않아도 연초에는 내 인생에서의 명구 하나, 시 한 대목 읊어보고 싶다. 그러지 않는다면 올해 말도 뭐 이러지 않을까?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김용희 문학평론가·평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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