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영어로 영어 가르치는 교사 ○×문제로 뽑는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영어 공교육을 내실화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영어교사의 실력이다. 정부가 서울시교육청이 도입한 ‘영어로 영어 가르치는 교사(TEE·Teaching English in English)’ 인증 제도를 내년부터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런 차원에서다. 그런데 동아일보가 첫 TEE 인증을 받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응답자 138명 가운데 68%(94명)가 ‘TEE 선발방식의 전면 또는 일부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TEE 교사 선발방식은 1차 필기시험과 2차 수업 시연(試演)인데 필기시험 100문항이 모두 ○×문제로 출제된다. 듣기와 말하기 시험이 없는 데다 필기시험 내용도 교육학 기초지식을 영어로 물어보는 것에 불과하다. 단순한 ○×문제 풀이로 합격한 영어교사가 과거 세대보다 훨씬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요즘 아이들의 영어교육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노무현 정부 교육인적자원부의 2004년 영어연수 6개월 프로그램에 참가한 영어교사의 평균 토익점수는 990점 만점에 718점밖에 안 됐고, 14%는 중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 2006년 대구지역 중고교 영어교사 50여 명에게 4개월간 어학연수를 시킨 뒤 국가공인 영어회화 능력 평가시험을 치른 결과 1000점 만점에 576.7점이었다. 같은 시험에 응시한 전국 중학생 평균점수보다 10점 낮았다. 이런 교사들한테서 배워봐야 영어능력이 향상될 리 없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0년도 업무보고를 통해 현재의 중학교 2학년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2013학년도부터 수능 영어의 절반을 듣기평가로 출제한다고 밝혔다. 초등학교 영어수업을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매주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리고 중고교에서도 매주 1시간 이상 영어회화 수업을 하기로 했다. 10년 이상 학교에서 영어를 배워도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자면 영어교사의 자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영어교사만은 영어구사 능력과 교수 능력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문제 잘 풀고 교육학 지식이 많다고 해서 영어교사가 된다면 학생들의 영어실력은 매번 그 타령일 뿐이다. 지금도 국내에서 원어민을 영어보조 교사로 활용하고 있지만 아예 정식 영어교사 자격조건을 바꿔 한국인 입양아나 해외교포 2, 3세 등 영어구사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한국과 연고가 있는 사람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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