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虎口 뛰어든 로버트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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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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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구호단체 ‘카프아나무르’ 소속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은 1997년부터 2000년 말까지 북한에서 의료 구호활동을 했다. 북한은 중화상을 입은 노동자를 위해 허벅지 피부를 떼어줄 정도로 헌신적인 그에게 친선 메달을 수여하며 고마워했다. 폴러첸은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 이후 북한에 눈엣가시가 됐다. 그는 올브라이트를 수행한 외국 기자들을 허가받지 않은 지역으로 안내하고 북한을 비방했다는 이유로 강제 추방됐다. 이후 폴러첸은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폭로하고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크리스마스인 25일 두만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간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박 씨도 폴러첸 같은 인권운동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 그대로 북한 주민에 대한 박 씨의 애정과 연민은 폴러첸 보다 더 깊을 것이다. 북한 인권단체 ‘자유와 생명 2009’ 관계자는 박 씨가 “나는 미국 시민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러 왔다”고 외쳤다고 전했다. 인권에 대한 신념 위에 신앙으로 무장한 그가 당당하게 걸어가 북한 초병에게 체포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미국인의 북한 국경 침범은 전례가 있다. 1996년 8월 한국계 미국인 에번 헌지커 씨가 압록강을 건너자 북한은 ‘한국을 위해 첩보활동을 한 간첩’이라는 억지 주장을 하며 그를 억류했다. 그는 빌 리처드슨 미 하원의원의 방북 협상 덕분에 3개월 뒤 풀려났다. 미국인 여기자 2명도 올 3월 취재 중 국경을 넘었다가 평양으로 날아간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주선으로 5개월 만에 풀려났다. 두 사건은 북한이 적대(敵對)의사 없이 불법 입국한 외국인도 중대 범죄자로 판단해 쉽게 석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박 씨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내는 편지를 품고 북한으로 갔다. 인터넷에 공개된 편지에는 수용소 폐쇄, 정치범 석방과 함께 김 위원장의 사퇴 요구까지 들어있다. 박 씨는 북한 주민은 꿈도 꿀 수 없는 금기(禁忌)를 깨며 호랑이굴로 뛰어든 셈이다. 그가 인류 보편의 권리인 인권을 위해 모험을 감행한 사실을 감안해 북한 당국이 인도적 조치를 할지 세계가 주시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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