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정관리 기업의 타락’ 대한통운뿐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4일 03시 00분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에서 드러난 비리(非理)는 법정관리 제도가 얼마나 악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7년이 넘은 법정관리 기간에 경영을 맡은 두 명의 사장이 개인 잇속을 챙기기에 바빴는데도 정부, 채권단, 법원 누구 하나 제대로 관리나 감독을 하지 못했다.

대한통운은 2000년 11월 부도를 낸 뒤 작년 3월까지 법정관리를 받았다. 1999년 5월 사장이 된 곽영욱 씨는 법정관리 후에도 이례적으로 2005년 7월까지 계속 사장을 맡았다. 그는 재임 중 이국동 부산지사장 등을 통해 150억 원가량의 회삿돈을 차명계좌로 빼돌린 혐의로 지난달 구속됐다. ‘회삿돈 빼먹기’의 공범이었던 이 씨는 곽 씨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됐고, 2001년부터 2007년까지 200억 원대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올해 9월 구속됐다. 저금리 대출 등 각종 특혜를 제공받고, 금융기관을 통해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법정관리 기업에서 비리가 만연한 것이다.

곽 씨는 대한통운 사장 퇴임 후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7년 4월 한국전력 자회사인 남동발전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 실력자들과 친분이 있던 모 경제신문 대표에게 공기업 사장이 되게 해 달라며 돈을 건넸고, 노 정권의 실세(實勢)들에게도 직접 로비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빼돌린 회삿돈이 로비를 하고 교제를 하는 데 군자금이 돼줬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법정관리에 편입된 기업 중 정관계 유착이나 경영비리 의혹이 제기된 기업이 많았지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법정관리 기업의 타락’이 대한통운뿐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정(司正)당국은 공소시효가 만료되기 전에 이제라도 철저한 수사로 비리 의혹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감시 및 감독 강화도 필요하다.

곽 씨는 검찰에서 “2007년 초 당시 한명숙 총리에게 5만 달러를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곽 씨가 총리 공관에 갔을 때 동행한 사람들의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 전 총리는 “곽 씨로부터 단 1원도 받은 적이 없다”면서 검찰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실체적 진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돈을 주었다는 사람의 구체적 진술이 나온 상태에서 계속 ‘정치적 수사’라면서 버티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으로서 법절차를 존중해 검찰에 스스로 나가 조사를 받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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