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삼승]사형 대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을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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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라는 제목의 영화가 최근 개봉했다.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입장에서 사형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방안이 과연 옳은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사형제도가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최초의 성문법인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함무라비법전이나 고조선시대의 8조 금법에도 나올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형벌임에는 틀림없다. 사형제도는 생명 박탈이라는 수단을 통해 응보와 범죄 발생의 예방이라는 긍정적인 기능을 수행했지만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갈등이 심화됐을 때는 복수나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악용됐다. 이 영향으로 18세기 무렵 유럽에서는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형법학자인 베카리아가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한 것도 이 무렵이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강조하는 오늘날의 많은 국가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의 존폐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시점은 1989년부터이다. 국제 민간인권운동단체인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가 1989년을 사형폐지의 해로 정해 사형폐지 운동을 벌이면서 국내에서도 사형폐지운동협의회가 결성돼 사형폐지 운동을 벌였다. 이에 따라 사형제도의 존폐문제는 학계 종교계 법조계는 물론이고 언론과 정치권 등 각계각층에서 늘 뜨거운 논의 대상이 됐다.

사형제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는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한 차례 다뤘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11월 28일 살인과 특수강간 혐의로 기소돼 제1심 및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 상고했던 피고인이 제기한 형법 제250조 등 위헌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형이 범죄자 생명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고, 오판에 대한 회복이 불가능하고, 개선과 교육이라는 형벌의 목적을 전혀 달성할 수 없다는 내용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사형제도의 존치와 폐지를 주장하는 양측 모두 상당한 철학적 배경과 법적 현실적 근거를 가지므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쉽게 배척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헌법 제110조 제4항 단서에 사형이 형벌의 종류로 명시돼 있고 반인륜적 흉악범죄에 대해선 사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타인의 생명을 부정하는 극악한 범죄행위, 예컨대 연쇄 성폭행 살인이나 대량 학살 등에 대해 범죄자의 생명을 박탈하는 방안은 다수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범죄자의 인권도 피해자의 인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보호해야 하므로 모두를 균형 있게 보호하려면 생명침해 범죄에 한해서만 제한적으로 사형제도를 존치하는 방안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생명침해와 무관한, 사상범이라든가 정치범에게는 사형을 선고할 수 없도록 법규정을 정비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한 20여 개 법률을 정비해 생명침해 범죄가 아니면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하지 않도록 대폭 축소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또 사형이 확정된 후에도 재심 청구가 가능한 기간에는 사형집행을 유예하고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경제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고 인정받지만 인권 및 법치주의 측면에서는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법치를 위한 여러 노력과 함께 사형제도를 새로이 검토함으로써 인권선진국으로 나아갈 때가 됐다.

양삼승 대한변협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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