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2012’과 ‘막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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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3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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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할리우드 영화 중에는 미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을 바탕에 깔고 제작된 것이 많다. 미국이 지닌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지켜내야 할 사회’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관객들에게 발신한다. 이에 따라 미국을 위한 희생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은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요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국 영화 ‘2012’는 이런 공식을 뛰어넘고 있다. 2012년 세계가 멸망하는 스토리를 담은 이 영화는 미국의 울타리를 넘어 세계 공존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공동체 가치 없는 한국 대중문화

지구 곳곳에서 지진과 지각 변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계 정상들은 비밀리에 대형 배를 건조한다. 인류 가운데 유전적으로 우수한 극소수를 선별해 대피시킴으로써 미래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 멸망의 날에 선착장에는 초대받지 않은 사람들이 대거 몰려든다. 고심 끝에 모두를 배에 태우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세계를 상대로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려는 마케팅 의도가 엿보이지만 내재된 가치관 측면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진화(進化)’라고 부를 만하다. 공동체의 범위를 미국에서 세계로 확장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영 중인 일본 NHK의 드라마 ‘아쓰히메’는 지난해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이 드라마는 19세기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다루면서 일본에 대한 자부심을 이끌어냈다. 주인공은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에게 정략적으로 시집 간 여성이지만 주변 인물은 하나같이 일본 근대화의 주역들이다. 이들은 극중에서 ‘강한 일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에 찬 대사를 되풀이한다.

당시 일본에선 서남(西南) 전쟁과 같은 대규모 내전이 일어나고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으나 이 드라마의 초점은 근대화를 이끈 주역들에게 맞춰진다.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공동체 지키기’라는 할리우드의 대중문화 공식은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정반대로 어둡고 부정적이다. 대한민국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는가 하면(영화 ‘실미도’ ‘웰컴 투 동막골’ 등), 부모 살해(‘공공의 적’) 교사와 학교의 그늘(‘여고괴담’ ‘두사부일체’) 등 아주 예외적인 소재들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기업에 대해서는 나쁜 이미지(‘작전’)로 일관되게 그려진다.

TV 드라마는 영화보다도 파급효과가 훨씬 큰데도 ‘막장 드라마’라는 유행어에서 드러나듯이 비정상적인 관계 설정과 자극적 전개로 일관하고 있다. ‘막 가야 (시청자들이) 막 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주로 심야시간대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와 시사 프로그램은 어디서 그런 것만 골라내는지 사회 갈등과 적개심을 부추기는 소재들로 채워지고 있다.

공영방송은 ‘긍정 메시지’ 전해야

이런 왜곡과 비틀림은 상당 부분 방송 제작진의 성향에서 비롯되고 있다. 툭하면 반(反)정부 투쟁에 나서고, 정권에 적개심을 드러내는 방송사 노조원들에게 공동체나 화합, 자부심 같은 가치들이 매력적인 방송 소재로 보일 리 없다. 이 점에서 어느 방송출연자의 ‘루저’ 발언 파문은 작은 문제일 수 있다. 밑바닥에 깔린 부정적 흐름을 바로잡게 된다면 방송 전체의 건강성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KBS와 같은 공영방송들은 긍정의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공영방송 개혁은 이런 큰 틀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을 넘어 세계까지 감싸 안는 마당에 우리 대중문화는 작은 우물 안에서 자기 파괴와 부정에 매달려 있으니 나라 전체가 연일 티격태격 싸움으로 지새우는 현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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