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고상두]EU와 동행, 위기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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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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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다양한 가치를 모두 실현하는 기술이다. 유럽연합(EU)이 헤르만 판롬파위 벨기에 총리와 영국 출신의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유럽의 새로운 두 얼굴로 임명하면서 회원국의 많은 요구조건을 동시에 충족했다. 대국과 소국, 남과 여, 좌파와 우파, 유럽합중국을 추구하는 연방주의와 국가주의의 이익을 모두 조화시켰다. 능력은 기본조건으로 고려되었을 뿐이다. 유럽통합의 심화는 늘 이러한 합의와 조정을 바탕으로 한걸음씩 진전돼 왔다.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 되려면

EU 정상회의를 신설하는 골자의 리스본조약은 여러 회원국의 비준 반대와 서명 거부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인선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면서 12월 1일부터 EU에 힘과 목소리를 실어줄 수 있게 됐다. 새로 선출된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회원국 정상회의를 주재하고 27개국의 국익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협상은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야 한다. 패자가 있는 협상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정치신조를 가지고 있는 판롬파위 신임의장은 유럽의 결속된 힘을 보여줄 적임자로 여겨진다.

최근 한국과 EU는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달 중순 자유무역협정(FTA)에 가서명했고 그 하루 전날에는 포괄적인 모법에 해당하는 ‘한-EU 기본협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새로 개정된 기본협력협정에서 한국과 EU는 교역을 포함한 모든 분야로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약속했다. EU는 전략적 동반자를 신중하게 선정하는 관례를 가지고 있는데 한국을 여덟 번째의 전략적 동반자로 지목한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는 든든한 우방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미국이라는 동맹이 있고 이제 유럽이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가 될 예정이다.

한국과 유럽이 서로에게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유럽은 동북아 삼국지에서 한국을 재발견했다. 유럽은 현재 중국과 가장 많은 경제협력을 하고 있으나 중국의 제한적 민주주의 때문에 협력을 격상하는 데에는 규범적인 제약을 받고 있다. 따라서 유럽과 중국 간 FTA 체결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유럽과 일본 간의 FTA 체결도 상호경쟁적 산업구조 때문에 먼 훗날에나 가능하다. 유럽은 한국을 동북아의 교두보로 생각한다. 동북아 시장을 노리는 유럽 기업의 한국 진출은 지금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 유럽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3억 인구의 중국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동북아 3국 가운데 일본에 이어 한국까지 친환경 경제로 돌아서면 중국에 결정적인 충격효과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제적 기여-기술 기준 높여야

이제 우리는 오랜 친구와 새로운 동행을 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가 EU의 동반자가 되려면 유럽의 수준에 맞추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가지고 EU와 협력해 왔다. 한-EU 기본협력협정으로 한국과 EU가 대등한 파트너 관계로 재정립되면서 한국의 정치경제가 EU의 수준으로 탈바꿈해야 할 시점이 됐다.

성숙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가치를 유럽과 함께 공동실현하고 우리의 국제적 기여를 높여야 한다. 그러려면 이에 따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어야 한다. 유럽이 우리에게 국제평화, 대외원조, 지구온난화 문제 등에 동참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비용이 되겠지만 우리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유럽에 수출하는 우리의 상품 역시 유럽의 안전, 환경, 기술기준 등을 충족해야 한다. 높은 수준의 유럽기준이 당장에는 우리에게 장벽이 되지만 그러한 기준을 뛰어넘으려는 노력은 장기적으로 우리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상두 연세대 교수 연세-SERI EU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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