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동은]공부에 짓눌려 생존권 포기하는 아이들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경남 양산에서 두 명의 여중생이 동반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열다섯, 꽃다운 나이의 두 소녀가 남긴 짤막한 유서에는 학교와 학원생활이 힘들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학업과 연관된 청소년의 자살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대학입시 시즌을 맞아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나 대학합격 예상점수를 다룬 수많은 언론기사를 접하면서 이번만큼은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희생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스로 목숨을 버린 아이들은 놀 권리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권리가 있음을 알았을까.

유엔총회는 20년 전 오늘, 생존 보호 발달 참여권 등 아동의 모든 권리를 집대성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협약은 18세 미만의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을 아동으로 규정하고, 아동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인정함으로써 아동권리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3개 나라가 비준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국제협약이 됐다.

생존의 권리란 충분한 영양과 적절한 보건진료 등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을 권리이며, 보호의 권리는 학대와 차별 폭력 고문 노동 약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이다. 발달의 권리는 교육받을 권리와 놀 권리, 정보를 얻을 권리 등 아동이 잠재력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권리이다. 참여의 권리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문제에 의견을 표현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지구촌에서 아동의 권리는 크게 개선됐다. 1990년 1400만 명이던 다섯 살 미만 어린이 가운데 연간 사망자는 900만 명으로 줄었고, 초등학교에 못 다니는 어린이는 2002년 1억2000만 명에서 9300만 명으로 줄었다. 협약은 많은 법령 개정과 관습의 변화도 만들어냈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할례와 조혼을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는 한편 아동노동 철폐를 위한 공정무역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많은 어린이를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은 1990년 1000명당 30명에서 선진국 수준인 5명으로 크게 줄었고 의무교육이 중학교까지 확대됐다. 민법 개정을 통해 여성의 혼인연령을 16세에서 남성과 같은 18세로 높여 조혼을 금지했고 부모에게만 인정하던 면접교섭권을 자녀에게도 부여했다. 장애인 특수교육법,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다문화가정 지원법을 통해 모든 아동이 차별받지 않고 자라도록 법으로 규정한 점도 큰 성과이다.

그러나 권리 개선과 더불어 다른 한쪽에서 무서운 속도로 자라난 ‘신종학대’가 있다. 과도한 사교육 열기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는 “모든 아동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놀이와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지나친 교육열과 날로 증가하는 사교육은 아동의 놀 권리만 침해하지는 않는다. 교육비 부담으로 악화된 가정경제는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아동의 권리를 침해하며, 사교육 때문에 벌어지는 교육 격차는 동등한 교육을 받아야 할 아동권리를 침해한다. 급기야는 학업에 대한 부담으로 아이들이 생존권을 포기하는 사태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지지하고 비준국에 홍보의 의무까지 명시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아동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이를 주창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한다. 아동권리를 정규 교과과정에 넣어 모든 아동에게 교육해야 한다. 권리교육을 통해 아동은 자신의 권리뿐 아니라 다른 이의 권리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책임을 가질 수 있다.

박동은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사무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