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준모]복수노조와 전임자 개혁, 더 미룰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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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노조는 허용하되 교섭창구 단일화 안을 마련하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 측의 임금 지급은 금지하자는 법률이 13년째 유예됐다. 기득권 집단은 노사관계 개혁을 완강히 거부하고, 정치권은 귀찮은 소란을 피하기 위해 매번 담합을 했다.

경제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은 반독점 공정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입법이다. 그간 경쟁노조 설립이 원천적으로 금지돼 기득권 노조의 독점이 고착됐다. 예를 들어 합리적인 노동운동을 바라는 노조원들이 노조를 하나 더 만들면 강경 노조지도부의 투쟁에 끌려 다닐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서 국제기준 준수는 글로벌 경제의 생존전략이다. 장차 복수노조 허용문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작동 과정에서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해서는 안 된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사관계의 오랜 병폐를 치유하려는 뜻을 담고 있다. 기업들이 지불하는 전임자 임금 총액은 연간 4300억 원 수준에 이르러 기업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사용자에게 임금을 받고 각종 편의도 제공받는 전임자가 노조의 자주성을 부르짖는 것도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이중성이다.

법적으로 노동조합 설립의 자유는 보편적인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권은 존중해 주되 단체교섭 단계부터 국가의 경제사회 사정에 맞게 조정과 규율을 하는 것이 글로벌 관행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복수노조 설립 금지라는 법률적 규제를 도입해 노동조합 설립 초입단계부터 금지하는 나라는 없다. 다만 단체교섭이나 파업 단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공익사업 파업 금지와 같이 조정이나 규제를 가하는 것은 글로벌 관행에 부합된다.

노사합의 결렬되면 현행법대로

전임자 급여 지원 문제에서도 전국이나 산업별 단위 노조전임자부터 사업장 수준 노조전임자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급여 지원을 하는 선진국은 없다. 설령 노조업무 종사자에 대한 급여 지원이 있더라도 아주 예외적이고 제한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용자가 전임자 급여를 전면 지급하는 관행이 글로벌 관행에 부합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노사는 복수노조와 전임자 임금 관련 법률을 또 유예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공익위원 안(案)을 중심으로 합의 도출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06년 세 번째로 법률시행을 유예하면서 노사정 주체가 3년 동안 최선을 다하자고 합의했다. 지금에 와서 2006년 논리를 다시 전개하면서 다시 유예하자는 것은 2006년 합의정신을 저버리고 노사관계의 신의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다.

2006년도 노무현 정부는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노동계의 FTA 반대투쟁에 밀려 법 시행을 유예했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까지 시행원칙을 강조하지만 노동계는 여전히 반발하고 있고 이런 와중에 세종시 문제로 나라가 들끓고 있다. 3년 전 한미 FTA 반대 시위 때문에 노사개혁이 미루어진 것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을지 걱정된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추호도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노사정 합의가 결렬된다면 현행법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복수노조는 허용되지만 교섭창구 단일화는 강제되지 않는다.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은 발효되지만 사용자 측이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을 유지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중앙의 정치적 노사단체와 일부 문제 사업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현장에는 이미 합리적인 문화가 정착돼 있어 1∼2년의 적응기간이 지나면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은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의 경험이기도 하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도 자율적으로 정비돼 갈 것으로 전망된다.

복수노조, 조합원 서비스 경쟁해야

물론 부정적인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는 없다. 몇몇 대기업에서 복수노조 등장으로 혼란이 초래되고 강성노조가 득세해 기업이 ‘은폐된 전임’을 유지시킬 수도 있다.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배제하기 위해 기업은 공정한 인사관리, 투명경영, 인간존중의 경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기업들이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원칙을 피해나가는 왜곡된 노무관리도 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조합도 복수노조 경쟁시대에 대비해 조합원을 길거리 정치투쟁에 내몰기보다는 고객인 조합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서비스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복수노조, 전임자 개혁은 노사관계 문제를 넘어서 국격(國格)의 문제이다. 노사관계 선진화를 글로벌 원칙에 맞게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브랜드를 제고해 주요 20개국(G20)을 선도한다는 구상에도 타격을 입게 된다.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는 이익단체들에 13년간이나 휘둘렸으면 이제 중심을 잡을 때도 됐다.

조준모 객원논설위원·성균관대 교수·경제학 trustcho@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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