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상훈]물 건너간 ‘영리병원 도입’ 연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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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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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8일 보건복지가족부와 기획재정부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영리병원 도입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정부는 용역 보고서를 토대로 공청회 등을 거쳐 11월 말 영리병원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제출된 용역 보고서는 ‘함량미달’이었다는 전언이다.

이 보고서는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고용 증가 △산업 활성화 △의료서비스 개선 등의 장점이 있다고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데이터를 제시하지 못했다. 영리병원 도입 후 국민의료비가 증가하고 지역별로 의료서비스 격차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할 데이터도 제시하지 못했다.

용역 보고서를 계기로 영리병원 도입을 밀어붙이려던 기획재정부의 실망이 컸다고 한다.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보고서를 접한 뒤 데이터가 빈약하다며 격노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연구 용역은 영리병원 찬반을 떠나 모든 걸 원점에서 검토해보자는 취지로 실시됐다. 그러나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복지부나 의료산업화를 위해 영리병원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재정부나 모두 만족하지 못할 보고서가 나왔다.

사실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이런 결과를 예견했다. 영리병원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두 부처가 대립 양상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윤 장관은 “일자리를 만들고 민간보험을 활성화하기 위해 영리병원 도입이 절실하다”며 전재희 복지부 장관을 압박했다. 그러나 전 장관은 “재정부가 △건강보험 당연 지정제 유지 △의료양극화 방지 △공공의료 재원 확충에 동의하면 영리병원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맞섰다.

상황이 이러니 상급 부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KDI와 보건산업진흥원의 토론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두 기관은 용역 보고서가 제출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견해차를 극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와 재정부는 용역 보고서 제출시한을 11월 30일로 한 달 늦췄다. 이에 따라 영리병원 도입 결정도 12월 말로 미뤄졌다. 그러나 연기된 시한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 달이 아닌 1년을 더 준대도 지금처럼 부처 간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상황이라면 완결성이 높은 보고서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는 충실하게 수행돼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처 간 합의가 중요하다. 윤 장관과 전 장관이 현재의 건강보험 체계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골격에 합의한다면 연구기관의 부담도 줄어들 테고, 논의도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영리병원 논의가 표류하지 않는 방법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김상훈 교육복지부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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