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종시, ‘계획 對계획’ 국민得失계산서 놓고 싸우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6일 03시 00분


세종시 문제를 놓고 정치권에서는 ‘약속’ ‘대계(大計)’ ‘배신’과 같은 온갖 수사(修辭)들이 난무하고 있다. ‘원안 수정’을 주장하는 측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양심’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원안 고수’ 쪽은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정치’를 강조하고 있다. 다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 수사들을 한 꺼풀 벗겨내 보면 상투적 정치 공방으로 충청권과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국민이 지금 알고싶은 것은 ‘원안 수정’과 ‘원안 고수’를 각각 선택할 경우 뭐가 좋아지고, 뭐가 나빠지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원안대로 세종시에 총리실과 9부 2처 2청이 옮겨가면 충청권에도, 다른 지역에도 같이 이익이 되는가. 10년 후, 50년 후에 남북한을 합친 7500만 대한민국 동포와 그 자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가. 원안대로 하면 당초 목표대로 50만 명이 먹고사는 자족(自足)도시가 될 수 있나. 사실상의 수도분할 이후 국가정책 협의엔 문제가 없는가. 그래도 약속한 것이니까 지켜야 한다고? 누가 누구에게 약속했다는 말인가.

2005년 3월 국회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이 통과될 때 한나라당의 수도권과 비주류(현재의 주류) 의원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박세일 의원은 의원직까지 버렸다. 박근혜 당시 대표가 노무현 정부의 대선공약이었던 ‘수도이전’을 ‘수도분할’로 버전만 바꾼 법안에 대해 ‘권고적 찬성’ 당론을 밀어붙인 것은 충청권 표심을 의식함이 없이 원칙에 맞았기 때문인가.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대선 막판에 세종시 계획 찬성으로 돌아섰으므로 설사 잘못된 계획이라도 이행해야 한다고?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이 대통령의 핵심공약인 대운하 건설은 죽어도 안 된다고 저지를 하는 것은 무슨 원칙이고, 일관성인가. 친박(친박근혜)계 가운데도 정부부처 이전은 문제가 있다는 게 소신이라던 의원들이 박 전 대표의 한마디에 입을 닫아버린 게 정상적 논의 구조인가.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후보로서 수도이전 공약을 비판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원안론에 민주당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국가지도자의 자세인가, 지역맹주의 자세인가.

이 대통령이 운을 떼고 정운찬 국무총리가 전면에 나서 제기한 수정론에 따라 기업 중심의 녹색도시, 과학·지식도시, 산업도시가 조성되면 자족도시를 만들 수 있나. 정 총리는 세종시에 원안보다 예산을 더 쓰겠다고 했는데, 세종시라는 작은 도시에 국가 재원을 뭉텅이로 털어 넣자고 하면 전체 국민은 동의하겠는가. 이 대통령은 전부터 원안이 잘못된 것임을 알았다면 왜 지난 대선 때는 “약속한 것은 지킨다”고 했나. 늘어나던 세종시 수정 여론이 박 전 대표의 ‘약속’ ‘원칙’ 발언이 나온 뒤 주춤해지자 “일단 원안대로 가자”고 하는 일부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은 국정을 책임진 여당 의원이 맞는가.

정치권은 국민의 이런 의문에 솔직하고 분명한 답안을 내놔야 한다. 감성적 구호로 국민을 호도해선 안 된다. 양측이 비용-효과에 관한 계산서부터 제시하고 어느 쪽이 한반도 미래까지 염두에 둔 국익에 부합하는지,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할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