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현동]상속세 폐지 반대한 ‘존경받는 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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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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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의 기원은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황제는 로마의 퇴역군인을 위한 퇴직금 재원을 찾다가 사람이 죽으면 재산을 남긴다는 사실에 착안해 상속재산의 20분의 1을 상속세로 부과했다는데 당시의 상속세는 단순히 재정조달 기능을 했다고 보인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조선시대까지는 상속세가 없었으나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조선상속세령이 처음으로 제정되어 상속세를 시행했다. 정부 수립 후인 1950년도에 와서는 상속세법과 증여세법을 제정 공포했고 여러 차례의 개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상속 및 증여세 세수는 지난해 기준으로 2조7000억 원이다. 총국세수입 167조 원의 1.6%에 불과하여 재정조달 역할은 크지 않지만 부(富)의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고자 하는 사회적 순기능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를 부담하는 인원은 전체 사망자의 1% 정도이고 미국은 1∼2%라고 하니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경제적 상위 계층이다.

부를 축적하는 데는 개인의 많은 노력과 능력이 중요하겠지만 기업체에 속한 여러 근로자의 기여, 주주 및 채권자의 투자 활동, 주변의 부동산 개발 행위, 국가의 공적지원 시스템(외교 국방 치안 도로…) 등 사회공동체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재산의 무상이전 시 일부를 상속 또는 증여세로 부담하는 일은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다. 특히 상속세는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에 적합한 세금이라 할 수 있다.

미국 공화당 정부가 2006년 의회에 낸 ‘상속세 폐지법안’은 상원에서 부결됐는데 세계적 거부인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가 스스로 나서서 상속세 폐지를 적극 반대해 화제가 됐었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효과가 특정 부유층에만 돌아갈 것이 우려되고, 상속세가 기회균등을 실현시켜 시장경제를 유지,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한다.

상속세는 사망으로 유산을 물려줄 때, 증여세는 생전에 재산을 대가없이 이전할 때 부과하는 세금으로 모두 재산의 무상이전 시 생긴다. 왜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상속·증여세 부담을 회피하려는 것일까. 재산을 물려주는 부모에게는 평생 모은 재산을 자녀에게 좀 더 많이 주고 싶은 마음이 있고 상속·증여 행위가 주로 가족 간에 이루어져 외부에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잘못된 판단 때문에 편법을 이용하여 세금을 줄여야겠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국세청은 ‘변칙 상속 및 증여행위 차단 업무’를 국세행정 변화 방안의 중점 추진과제로 선정하고 세법질서를 확립하려는 차원에서 차질 없이 집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 일환으로 대재산가의 재산변동 상황을 분석하고 회사 자금의 불법 유출행위, 재산취득 과정이나 주식변동 과정에서의 변칙 상속·증여 행위가 있는지를 집중 관리하고 있다. 또 국세통합시스템이 변칙행위를 더욱 쉽게 분석하도록 전산시스템을 개선했다.

과거 12대에 걸쳐 400년 동안 나눔을 실천한 경주 최부잣집은 만석 이상 재산을 모으지 않는다는 가훈에 따라 소작료를 낮춰주거나 흉년이 들면 곡식을 무료로 나눠줬다고 한다.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을 변칙적인 방법으로 자녀에게 물려주려다 탈세 오명을 남기지 말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성실하게 납세함으로써 재산과 함께 고귀한 이름도 물려줄 수 있는 현명한 선택을 하는 이가 많기를 기대한다.

이현동 국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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