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용훈]경차, 장관-의원이 먼저 타라

  • 입력 2009년 9월 2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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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CO₂) 감축과 에너지 절약이 강조되면서 경차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경차의 수요는 크게 늘지 않았다. 1991년 국내에 처음 등장한 이래 경차는 경기 사이클과는 정반대의 수요곡선을 그리며 부침을 반복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는 경차가 인기를 얻다가 경기가 풀리면 다시 수요가 급감했고, 지원제도가 등장하면 반짝 수요가 생기다가 사라지는 일을 되풀이했다.

자동차 소비자의 선택은 종종 비합리적인 소비행태로 나타나곤 한다. 경제규모나 1인당 소득수준, 그리고 교통 환경이나 유류가격을 감안할 때 경차나 소형차를 더 선호할 듯한데 오히려 선진국보다 더 큰 차를 탄다. 국내 승용차 평균 배기량은 2150cc이지만 프랑스는 1680cc, 영국은 1777cc, 독일이 1860cc로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우리보다 작다. 경차보유율도 우리는 8%를 넘지 못하지만 이탈리아 55%, 프랑스 40%, 일본 27% 등 선진국에서 경차를 더 많이 탄다.

선진국에 비해 교통여건이 좋지 않고 소득수준이 낮은데 경차 이용이 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차에 대한 지원제도가 적은 것은 아니다. 여러 인센티브를 따져보면 어느 나라 못지않게 다양하고 혜택도 작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경차를 상대적으로 덜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를 선택할 때 구입가격이나 운행비용 이외의 비용을 감안하여 종합적인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경차를 구매하고 이용하는 단계에서 얻는 경제적 편익보다도 경차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가치가 디스카운트됨으로써 지출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훨씬 크다고 인식하면서 경차 선택을 꺼린다.

따라서 경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장치를 확대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경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차를 타는 사람이 좋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푸대접을 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경차를 보급하기 어렵다. 소비자는 자동차 소비의 거품을 걷어내고 지구를 살리는 녹색 소비생활을 실천한다는 자세로 경차를 선택하고 주변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예우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를 확산하기 위해서는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이 솔선해서 경차를 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경차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그들 스스로 직접 체험하면서 보고 느낀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경차가 제자리를 잡게 하는 일이다. 경차가 정부의 보호 아래 제도적인 지원을 지속적으로 받으려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의 경차는 무늬만 경차지 일반 승용차보다 뛰어나지 못할 때가 많다.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다 보니 엔진과 차체만 경차일 뿐 연료소비효율은 소형차와 차이가 없는 차가 된다. 오염 방출량도 마찬가지다. 경차의 콘셉트는 친환경이지만 만일 경차가 시속 100km 이상 달리면 일반 승용차보다 더 많은 오염물질을 내뿜는다. 환경이나 에너지 효율 면에서 유리하지 않은데 경차라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하다. 게다가 하이브리드나 고연비차가 이미 시중에 나오는 상황이고 보면 경차의 본래 목적과 취지에 맞도록 경차를 리모델링하는 일이 시급하다.

경차는 경차다워야 한다. 제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경차는 명분을 갖추어야 하고 그 범위 안에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국민은 경차의 정신을 높이 사서 경차를 타는 사람을 존경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런 여건이 조성된다면 경차는 다시 각광을 받을 것이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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