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테이션/동아논평]국회의원 탄원에 조용한 판사들

  • 입력 2009년 3월 11일 16시 43분


동아논평입니다.

제목은 '국회의원 탄원에 조용한 판사들'. 이진녕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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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범법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 의원을 구명하기 위해 집단으로 법원에 탄원서를 내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지난 한 달 사이에 그런 일이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한번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서 당선무효 형을 선고받고 항소해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 대한 선처를 부탁한다며 지난달 105명이 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번은 병원 설립과 관련한 로비 대가로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민주당 김재윤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해달라며 며칠 전 163명이 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지만 김 의원 탄원서가 접수된 직후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습니다.

법은 지위의 높고 낮음이나 재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합니다. 국회는 바로 그런 법을 만드는 곳이고, 법원은 그 법에 따라 잘잘못을 심판하는 곳입니다. 그것이 헌법이 규정한 삼권분립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그 법을 근거로 심판자 역할을 하고 있는 법원에 대고 자신의 동료를 구속하지 말아달라거나 형을 깎아달라고 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됩니까. 사법권 침해이자 헌법 위반입니다. 또한 국회의원은 직무를 수행하는데 있어 국가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도 어긴 것입니다. 법질서를 똑바로 세우는 것보다 동료를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국익 입니까.

더구나 국회의원은 국정감사권과 예산심의권 같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아무리 사소한 부탁이라도 사법부엔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탄원서를 내는 국회의원들의 의식이 한심하지만, 사정이 이런데도 당사자인 법원과 판사들이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지금 일부 판사들은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시위 재판진행과 관련한 e메일 때문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아직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명백한 재판간섭'이라거나 '중대한 재판침해'라고 단정하면서 사퇴까지 주장하는 판사들도 있습니다.

법관은 무엇보다 사실관계를 근거로 판단해야 함에도 정작 명백한 사실인 국회의원들의 집단 탄원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사법권 침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말 못할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동아논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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