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칼럼]2001년의 천지개벽, 그 후 5년

  • 입력 2006년 12월 21일 19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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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교육은 1970년대 자동차산업 같다. 무기력 비효율 구시대적인 데다 소비자가 아닌 피고용인에게 휘둘린다. 이러다 중국에 저임금 일자리는 물론 고급 인력까지 뺏길 판이다.”

우리나라 얘기 같지만 아니다. 미국의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최근 획기적 교육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교육 현실 개탄론이다.

9·11과 12·11의 세계화 격변

기업에 학교 경영을 맡기고, 우수 교사에게 연봉 10만 달러를 주자는 놀라운 개혁안이 나온 것은 2001년의 두 사건과 연관이 있다.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대한 테러와 12월 11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세계의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남의 나라 일 같아도 강 건너 불이 아닌 이유는 내 엉덩이가 뜨겁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은 취임 첫해 “냉전질서가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고 그 자리에 화해와 협력의 새 질서가 싹트고 있다”고 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노동 인력 자본 흐름이 자유로운 세계화로 과실(果實)도 커진 만큼 세계의 갈등과 경쟁도 치열해진 게 현실이다.

과거에도 핵으로 세계를 위협했던 북한이 과거처럼 미국의 ‘양보’를 얻어 낼 수 없는 큰 이유도 9·11에 있다. 테러를 겪은 미국은 북핵이 알카에다나 이란 같은 적대세력에 넘어가는 일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막아야 한다. 과거의 복지천국 유럽에서 “노조는 죽었다”며 복지제도를 줄여 가는 이유도 12·11에 있다. 별안간 노동인구가 두 배로 늘어난 세계시장에서 겨루려면 노동비용에 포함된 비싼 복지비용을 줄이거나, 중국이 못 따라온 기술과 지식으로 앞서 달려야 한다.

9·11과 12·11에 중국이 관련된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테러세력은 석유 많은 곳에 몰려 있고, 경제발전이 급한 중국은 이들을 포함해 러시아 중앙아시아 수단 등 ‘독재국가’들과 에너지 외교에 열을 올린다. 공교롭게도 유럽에선 무슬림 이민자들이 중국 저임금노동의 직격탄을 맞았고, 선진국 일자리도 중국으로 옮겨 가고 있다.

중국을 고리로 연결된 중동-테러-에너지 그리고 북핵까지 찬찬히 들여다보면 반(反)세계화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중국은 세계화를 지향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는 결사반대하는 ‘절반의 상태’다. 그 대립각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세계화의 나라들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 국가들은 중국과 반세계화 국가에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9·11, 12·11 뺨치는 교육개혁을 해야 할 상황이다.

애매한 건 대한민국 처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헌법정신에 비춰 봐도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야 마땅하나, 우리 현실은 그렇게 명쾌하지 않다.

냉전은 1991년 막을 내렸고 2001년 세계화의 대변혁으로 갈등과 경쟁이 가속화됐는데도, 2003년 취임한 대통령은 ‘냉전 끝, 평화 시작’이라고 한가롭게 말했다. 그러니 북한에 화해와 협력을 애걸하고, 무식한 386과 강성노조 전교조에 휘둘려 세계적으로 한물간 노동 경제 교육정책을 고집하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거꾸로 정권’과 1년 살아남기

대통령이 ‘도덕적 이상을 지향하는 것’(2005년 9월 28일)을 말릴 순 없다. 다만 세계화시대에 세계를 잘못 보면서도 ‘올바른 전략을 선택하고 올바른 정책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2006년 5월 3일)면 내 삶은 하루하루가 위태롭다. 남은 1년간, 정권이 바뀌어도 바꿀 수 없는 반세계화 정책을 쏟아 내면 내 딸의 삶은 어떻게 될지 오싹해진다.

대통령 측근 안희정 씨는 “역사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당을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안 그래도 여당은 세계화의 미아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 진짜 노사모 회원이자 또 다른 노사모(노무현을 찍었다가 사기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인 신상훈 씨는 1년간 살아남는 방법의 하나로 “이민을 가라”고 했다. 이 땅에서도 살아남으려면 이민 갈 각오로 ‘정권 빼고 우리끼리 세계화’에 힘쓰는 수밖에 없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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