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동정민]쏟아지는 성폭력 대책, 실천이 중요하다

  • 입력 2006년 2월 2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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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29일 미국 뉴저지 주에 살던 메건 니콜 캥카(7) 양은 강아지를 사 주겠다는 말에 건너편 집 아저씨를 따라갔다 잔인하게 강간당하고 살해됐다. 범인은 이미 아동 성범죄로 2차례 유죄판결을 받은 상습범이었다. 주민들은 “재범률이 높은 아동 성폭력범의 신원을 공개하라”고 외쳤고 뉴저지 주는 사건 발생 89일 만에 ‘메건법’(성범죄자 석방 공고법)을 제정했다. ‘메건법’은 2년 뒤 연방법으로 확정돼 아동 성범죄 재발 방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등학생 허모(11) 양은 17일 새 신발을 주겠다는 신발가게 아저씨의 말을 듣고 가게에 들어갔다가 성추행당한 뒤 살해됐다. 이 사람도 5개월 전 4세 여자 아이를 성추행해 집행유예로 풀려난 상습범이었다.

21일 오후 경기 고양시 관동대 명지병원 영안실에서 만난 허 양의 아버지는 정부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동 성추행범이 초등학교 근처에서 신발가게를 하는 것 자체가 사고를 예고한 것”이라며 “범인이 활개 칠 수 있는 환경을 방치해 놓고 죽은 사람만 안타까워하면 뭐 하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내 딸의 죽음을 계기로 아동 성폭력범에 대한 정부와 경찰의 철저한 관리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양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충격파 때문인지 아동 성폭력범에 대한 대책이 쏟아지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성폭력범 신상 공개 확대, 법무부는 성폭력범 야간 외출 제한, 여성가족부는 성폭력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치인들도 성폭력범 집에 문패 달기, 위치 추적 전자팔찌 착용 의무화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들이 실효성이 있을지에 대한 검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 여성학 교수는 “정치인과 정부가 인기에만 급급해 설익은 정책만 양산하고 있다”며 “아동 성폭력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현실성 있고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여성부 장하진(張夏眞) 장관은 23일 허 양 부모를 만난 자리에서 매년 2월 22일을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추모하는 ‘수호천사의 날’로 정하겠다고 밝혔다.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 허 양이 또 발생할지도 모를 아동 성폭력 피해자를 막을 수 있는 수호천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동정민 사회부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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