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기획 시론<1>]한영우/세계4강의 문명국으로…

  • 입력 2002년 8월 11일 18시 36분


20세기 전반기 영국의 유명한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1889∼1975)는 그의 명저 ‘역사의 한 연구’에서 인류 문명의 발생과 소멸을 ‘도전’과 ‘응전’의 관계로 설명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토인비의 문명론이 나온 시기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무렵으로 일제의 극심한 도전에 우리 민족의 치열한 응전이 불꽃을 튀기던 시기이기도 했다.

▼월드컵 통해 응전력 확인▼

구태여 토인비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류 문명이 자연이나 인간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성쇠가 좌우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문제는 응전의 방법이다. 흔히 군사력이나 기술로 대응하는 것을 응전으로 생각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신력이다. 토인비는 이를 ‘자기 표현’ 혹은 ‘자기 결정’이라고 했는데 ‘주체성에 의한 창조력’으로 바꿔 불러도 좋을 것이다.

8·15 57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면 우리처럼 도전과 응전의 연속으로 점철된 역사도 드물성 싶다. 한사군(漢四郡)의 도전과 그 응전이 삼국의 웅비를 가져오고, 거란(契丹)의 도전을 이겨내면서 고려 중기 유불(儒佛) 절충문명이 꽃피었다. 몽골의 도전에 대한 응전이 15세기 세종문화를 낳았으며, 18세기 찬란한 영정(英正)문화는 청나라의 도전에 대한 응전의 결과였다. 그리고 바로 21세기를 뜨거운 함성으로 열어가고 있는 우리 시대는 일제의 가혹한 도전을 이겨내려는 치열한 응전의 과정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어디서 응전의 힘이 생겼는가. 우리가 응전의 대가로 얻어낸 문명의 열매 속에는 한결같이 ‘주체성에 의한 창조력’이 담겨 있다. 세종문명의 꽃인 ‘훈민정음’이 그러하고, 영정조의 실학문명이 또한 그렇다. ‘주체성에 의한 창조력’은 역사라는 기억장치를 통해서 담아냈다. 그래서 위대한 문명이 꽃피는 시대에는 항상 왕성한 역사 의식과 역사 편찬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독립운동 가치고 역사를 소중하게 다루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친일한 사람일수록 역사를 자조하면서 백안시했다.

불과 두 달 전 우리의 뜨거운 응전이 세계를 또한번 놀라게 했다. 형태는 축구이지만 그 의미는 문명적 해석이 가능하다. 기술은 서양인에게서 배웠지만, 정신은 바로 우리 것이었다. 아마 거스 히딩크 감독 자신도 한국 선수와 국민의 열기에 놀랐을 것이요, 그래서 더 분발했을 것이다. 지연과 혈연을 떠나 선수를 선발하고, 기초체력을 다지는데 주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서구적 가치만은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줄기차게 추구해온 가치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의 성공은 ‘주체성에 의한 창조력’의 한 표현이라고 해도 좋다.

조선시대 문명이 고려와 다른 점이 바로 지연과 혈연을 떠나 인재를 쓰려는 정책이 진일보한 것이고, 문명의 기초로서 기초학문인 인문학 즉 유학을 장려한 것이었다. 지나치게 기초학문에 집착한 것이 산업화에 지장을 주고 근대화를 더디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지식정보화시대가 열리면서 기초학문의 전통이 긍정적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문명사적인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를 바라본다면 인문 중시, 기초학문 중시의 한국 문화가 기술 존중의 서양문명을 받아들인 일본에 진 것이다. 산업화시대에는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다. 기술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복합기능을 추구하는 미래의 기술은 상상력을 풍부하게 키워주는 기초학문이 단단한 나라에서 발전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문명적 전통을 지녀온 우리가 응전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월드컵을 통해서 우리 민족의 응전 능력은 확인되었다. 일본에 대한 열등감에서만 벗어난 것이 아니라, 서양 콤플렉스를 벗어던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8·15가 일본으로부터의 광복을 가져왔다면, 월드컵은 서양으로부터의 광복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사실 일본으로부터의 광복은 서양으로부터의 광복에 의해 완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가혹한 식민 지배 자체가 일본문명과 서양문명의 합작품이기 때문이다.

▼후진정치가 저력 발휘 막아▼

우리의 고민은 평균적인 한국인에 대한 믿음과 정치지도층에 대한 불신의 이중구조에 있다. 역사를 통해서 도도하게 흘러온 ‘주체적 창조력’과 현명한 응전은 평균적인 한국인에게 넘쳐 있으나, 그 창조력과 응전이 정치적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현실이다.

수천년 역사에서 축적되어온 응전의 지혜를 국정에 반영해 세계 4강의 문명국으로 올라서고 300년 주기 중흥의 역사를 다시 여는 것이 광복 57주년을 맞는 우리의 각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영우 서울대 교수·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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