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단식 기도' 실상사 주지 도법 스님 인터뷰

  • 입력 2001년 7월 19일 18시 34분


후대의 사람은 이걸 ‘실상사 결사’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아마도 성철(性澈)스님 등이 한국 불교의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친 해방 직후의 ‘봉암사 결사’를 떠올리면서….

18일 남쪽으로 몰려가는 장마구름을 쫓아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의 실상사를 찾았다. 실상사는 최근 불교계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인사 청동좌불 논쟁의 중심에 있다.

해인사가 높이 43m짜리 대형 불상을 건립하려고 하자 실상사의 수경(收耕) 스님이 이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고 해인사 수좌들이 실상사를 찾아와 수경 스님의 방문을 부수고 내부기물을 파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밀고 당기는 실랑이 끝에 해인사는 청동좌불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고 수경 스님과 실상사 주지인 도법(道法·52)스님 등은 지난 5일부터 종단의 폭력근절을 위해 3주일간 참회의 단식 기도정진에 들어갔다.

◇가슴속 폭력씨앗 뿌리뽑아야

절앞에는 지리산 뱀사골에서 백무동으로 흘러들어가는 만수천이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 다리위에 서니 꼭 한달전 해인사 수좌 30여명이 수경스님 방으로 가기 위해 떼지어 다리를 건너는 모습이 눈에 잡힐 듯했다.

단식중인 도법스님은 눈에 띄게 야위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50kg 밖에 나가지 않던 작고 마른 몸이 단식 14일째를 맞아 45.5kg으로 졸아들었다.

도법스님은 98년 종단 폭력사태 당시 전국승려대회에서 임시총무원장으로 추대돼 폭력사태를 수습하는 등 교계에서 신망이 높은 스님이다.

-‘먹음’과 ‘먹지 않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먹지 않음’과 ‘뉘우침’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라는 책을 보면 한 창녀가 싯다르타에게 ‘당신은 나에게 뭘 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싯다르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단식할 수 있다’고. 먹고 싶다는 것은 인간의 가장 강렬한 욕망입니다. 단식은 그 질긴 욕망까지도 이길 수 있다는 뜻이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극복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육체적으로 단식은 먹기 위해 오가는 행위까지도 멈추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침잠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남에게 상처를 준 것들,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 것들을 직시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뉘우침’은 누구를 향한 ‘뉘우침’입니까. 격한 어조로 해인사 청동좌불 건립을 비판해 그곳 스님들을 화나게 한 수경스님은 그렇다 치고 스님은 왜 참회하는 것입니까.

“해인사 수좌들이 실상사에서 난동을 부리는 장면을 보는 순간 98년 종단 폭력사태가 생생하게 떠올랐고 그 폭력성이 내게는 없는가 되돌아봤습니다. 폭력성은 해인사 수좌들을 원망으로 대했던 우리 각자의 가슴에도, 총림에도, 선원에도, 본사에도, 말사에도 언제든지 분출하고야 말 화산으로 살아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몇몇 특정인을 문제삼기보다 모두의 가슴에 부글거리고 있는 폭력의 씨앗을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인사 태도 왈가불가할 생각없어

-실상사가 참회에 들어가자 해인사도 사과했는데 그 사과문에서 ‘시비는 옳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을 버림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옳고 그름을 동시에 끊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 말속에는 물량주의와 폭력성을 얼버무리는 함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시비를 놓아라’ ‘분별을 버려라’ 하는 것은 깨달음의 언어이지 현실을 다루는 언어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바른 것을 드러내기 위해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은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해야 할 대상에 화내지 않고 증오해야 할 대상을 미워하지 않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길을 가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강대국들이 약소국인 석가국을 쳐들어왔을 때 부처님은 한낮 뙤약볕속에 고목나무 아래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정복군 장수들이 ‘무성한 숲이 주변에 널려있는데 하필이면 고목나무 아래 서 있느냐’고 물었을 때 부처님은 ‘자기 종족이 없는 것은 한낮에 고목나무 아래 서 있는 것과 같다’고 답했습니다. 기온이 40도 넘게 올라가는 인도에서 한낮 고목나무 아래 서있는 것은 죽음을 뜻합니다. 약육강식의 현장에서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정복군은 부처님에게 감동해 돌아갔습니다.”

-부처님 법의 작은 불씨를 살려내기 위한 노력이 ‘실상사 참회에 해인사도 사과’라는 식으로 서둘러 봉합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해인사는 엊그제 총무원측의 진상조사를 거칠게 방해하기도 했다는데요….

“우리가 참회를 시작한 것은 이 문제를 실상사와 해인사간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종단 전체의 문제, 종단에 속한 우리 각자의 문제로 삼고 싶었던 것입니다. 처음 뜻한 바 대로 해인사의 태도를 놓고 왈가불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종정스님을 비롯한 종단의 큰 어른들이 폭력이 종단의 고질적 병폐임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에 나서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남원〓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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