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의 세상읽기]굿판처럼 신명나게…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굿이란 본디 우리 삶터 어디엔가 동티가 나거나 해서 원귀가 붙으면 이를 위무하거나 쫓기 위해 벌이는 행사다. 그런데 용한 무당은 어느 집에서 굿을 할 때면 동티가 난 그곳이나 원귀 하나만이 아니라 집안을 두루 고르게 평안하게 해준다. 바로 공간에 대한 배려다. 굿이란 또 먹을 것 없던 시절 동네잔치여서 동네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서도 굿판을 찾아와 구경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고 했다. 정말 용한 무당은 그래서 굿하고 나서 사흘 쯤 뒤에 거듭 굿판을 열거니와, 소문듣고 오다가 넘어져 다친 사람이나 소문 늦게 들어 미처 오지 못한 사람들의 한을 고루 풀어주기 위해서다. 이번엔 시간에 대한 배려다. 오늘은 어느새 한해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난데없이 무당과 굿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아닌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나름대로의 비나리를 위해서다. 어느 해고 마찬가지겠지만 올해는 유난히 일도 많고 말썽도 많았다. 그래서 유난히 스산한 세밑에 상징적으로라도 푸닥거리나 한바탕 해야 할 것 같아 굿타령을 해보는 것이다. 하기는 웬만해서는 꿈쩍도 않는 우리지만 그래도 이런 세상살이가 버거웠는지 올해에는 하물며 귀신이며 환생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이 세상의 삶이 고단하고 힘겨운 나머지 귀신까지 끌어들여 농담을 해야 하고 또 환생을 빌려 다른 세상의 삶을 곁눈질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우리네 삶은 헝클어진 세상보다 더 어지럽다. 아무리 세상이 그렇다고 해도 우리네 삶의 태도는 너무 흐트러졌다. 탐하고 다투고, 가르고 나누고, 그도 모자라 찢겨질대로 찢겨있다. 결국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다. 이를테면 나날의 삶을 나누고 사는 가정만 해도 그렇다. 처음에는 누구나 천상의 꿈으로 가정을 꾸리건만 살다보면 생지옥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귀신이고 환생이고 다 부질없다. 오로지 우리 하기 나름이다. 아무리 세상이 헝클어져 어지러울지라도 우리는 지금, 여기 우리 삶터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무엇보다도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그리고 새해에는 욕심부리지 말고 각자 선자리에서 조촐한 굿판을 벌여보자. 혼자 굿판까지 만들기 힘들다면 용한 무당이 하는 굿판같은 데 끼어 북채라도 잡고 비나리패라도 되어 잘 어우러진 삶터의 굿판을 꾸며보자. 귀신과 환생으로 가뜩이나 텅빈 삶을 더욱 스산하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우리 각자 선자리의 삶이 걸판진 굿판, 잔치판이 되도록 신명을 지펴보자. 그리고 제발 구석구석 좀 살피고 조금 뒤미친 사람들도 돌보는 그런 굿판이 되도록 모두 함께 애써보자. (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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