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방과후 영어, 유지냐 폐지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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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2월까지만 한시적 허용… 새 정부 지침 아직 안정해져
일선학교 ‘내년 수업 계획’ 고민
“비용 저렴해 저소득층 학생 혜택” vs “정부가 선행학습 앞장” 찬반 갈려

“이제 곧 내년도 교육과정을 짜야 하는데 1, 2학년 방과후 영어를 계속해도 될지….”(서울 A초등학교 관계자)

초등 1, 2학년 대상 방과후 학교 영어 수업을 두고 일선 학교 현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영어는 초등학교의 방과후 수업에서 가장 인기 많은 과목이지만 1, 2학년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영어 수업은 규정상 내년 2월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초등학교에서는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수업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초등 3학년부터 영어를 배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2014년 특별법 시행 당시 정부는 별도의 조항을 통해 정규 수업이 아닌 방과후 학교에서는 2018년 2월까지 한시적으로 초등 1, 2학년에게도 영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했다. ‘학교에서 안 가르치면 사교육을 더 해야 한다’는 학부모의 반발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런데 이 기한이 당장 내년 초로 다가온 것. 서울 지역 한 방과후 담당 교사는 “실제 원어민 수업 장면을 보면 1, 2학년 아이들이 가장 활기차게 참여한다”며 “저학년일수록 제일 인기 많은 수업이 영어인데 내년부터 어떻게 될지 몰라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의 교사는 “우리 학교는 저소득층이 많아 방과후 영어가 더욱 큰 역할을 한다”며 “초등 1, 2학년의 방과후 영어가 금지되면 사교육 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방과후 학교와 학원 간 영어 교육 비용 차는 매우 크다. 방과후 원어민 영어 수업은 주 5회 50분 수업이 월 10만 원 선이지만 일반 학원의 비슷한 수업은 5배가량 비싸다. 방과후 영어는 저소득층 학생들도 정부가 보급하는 60만 원 상당의 무료 수강권을 활용해 들을 수 있지만 방과후 영어가 폐지되면 저소득층 1, 2학년은 영어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영어 조기 교육 폐해와 사교육 과열을 우려하는 일부 학부모 및 교육시민단체는 1, 2학년에겐 방과후 영어를 가르치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선행교육을 막아야 할 교육부가 앞장서 선행교육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등 1, 2학년의 방과후 영어 허용은 결국 ‘영어 교육의 적기는 언제부터인가’ ‘학교가 가르쳐야 사교육이 줄어드는가, 아니면 반대인가’ 등 새 정부가 지향할 ‘교육 철학’이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내부적으로 국내 초등학교의 방과후 영어 수요를 파악한 결과 전체 방과후 영어의 44%가 1, 2학년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사교육 및 학업 부담 줄이기’와 ‘교육 격차 해소’라는 두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새 정부의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8월이나 9월 중 정책 부서 조율과 현장의견 수렴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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