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터 행정부 외교책사 브레진스키 별세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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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美中 국교 정상화 주역… 사형선고 받은 김대중 前대통령 구명에 힘써

1970년대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이끌며 미중 국교 정상화를 이뤄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6일(현지 시간) 미국 버지니아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시 미국 외교를 이끌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94)과 함께 세계 외교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거물이다. 독일 출신의 키신저가 미국 보수적 공화당의 현실주의 전략가였다면 폴란드 출신의 고인은 진보적 민주당의 현실주의 책사였다. 그가 1997년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저서를 낸 뒤 국제정치학계는 국제 정세를 비유할 때 ‘체스판’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고인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미국 언론인 돈 오버도퍼의 저서 ‘두 개의 한국’에 따르면 고인은 1970년대 카터 대통령이 내각 전체의 반대에도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할 때 거의 유일하게 카터를 옹호한 주한미군 철수론자였다. 카터가 1979년 한국을 다녀간 뒤 사실상 주한미군 철수 방침 철회를 발표한 사람도 역설적으로 고인이었다.

고인은 2012년 저서 ‘전략과 비전’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로 미국이 자국 안보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신뢰(핵우산 신뢰의 위기)가 낮아지면 한국 대만 일본 등이 핵무장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또 미국의 국력 약화로 안보 불안에 직면한 한국이 2025년 중국을 선택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북핵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1990년대부터 미국 정부에 강력한 북핵 제재를 요구했고 2002년 CNN 인터뷰에서는 북한 위협 제거를 위해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말 것을 주장했다.

1980년 당시 전두환 신군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란예비음모 등으로 사형을 확정하자 고인은 카터에게 김 전 대통령이 사형되면 북한에만 좋은 일이라는 편지를 써 김 전 대통령이 사형 위기를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7년 카터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이 된 고인은 다음 해 국무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방중해 미중 수교 협상을 시작했으며 1979년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를 이뤄냈다.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은 27일 고인에 대해 “전략가이자 외교관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중국 인민의 오랜 친구였다”는 위로 성명을 발표했다.

폴란드 출신답게 유독 옛 소련 문제에는 강경한 견해를 굽히지 않았다. 미중 수교 전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이 미국-중국-소련 사이의 삼각균형 정책을 추진하려 하자 이를 “곡예”라고 비난하면서 소련을 봉쇄하고 중국과 가까워지는 전략을 추진했다.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중재해 중동평화 협상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고인은 은퇴 뒤 미국 쇠퇴론을 전제로 미국 외교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을 이어왔다. 1990년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F학점짜리 실패한 전략”이라며 반대했다. 2012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는 미국이 빈부격차 해소 등 국내 문제를 해결해야 글로벌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2025년경 세계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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