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해임건의안 만화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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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철호 농림부 장관은 3대 국회 때 ‘무능 장관’으로 찍혔다. 1955년 취임 5개월 만에 쌀값이 67%나 치솟고 대체재였던 밀가루 값마저 2배로 폭등했다. 국회가 쌀 배급제를 요구했지만 공매제를 고집했고 공매를 하면 쌀값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자 “쌀값이 오르고 내리는 것은 하느님만이 아는 일”이라는 한심한 답변으로 빈축을 샀다. 위세당당한 자유당 조직부장까지 지낸 그는 취임 반년 만에 불신임안 가결로 쫓겨나는 신세가 됐다.

 ▷검사 출신인 권오병 문교부 장관은 16, 18대 문교부 장관을 지냈고 그 사이에는 법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사립대 휴업령, 한일회담 반대 교수와 학생 축출 및 징계, 국민교육헌장 강행이 꼬리를 물었다. 재임 기간 내내 문교행정은 그야말로 좌충우돌했다. 1969년 임시국회 때 한 의원에게 “그따위 발언 취소하라”고 대들어 여야 의원들이 들고일어나자 “그런 말은 속기록에 없잖아, 속기록을 봐”라고 반말하다 해임안이 가결됐다. 여당인 공화당 소속 40여 명이 반란표를 던졌다. 3선 개헌으로 장기 집권을 노린 박정희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당내 갈등 탓이었다.

 ▷2년 뒤 오치성 내무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올려왔다. 실미도 사건 등으로 치안 공백을 노출했다는 이유다. 여당은 누구도 동조해선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엄명을 어기고 3선 개헌에 앞장섰던 공화당 실세 ‘4인 체제’(김성곤 백남억 길재호 김진만)가 ‘10·2 항명’을 일으켰다. 중앙정보부가 출동해 김성곤은 콧수염까지 뽑혔고 20여 명의 항명 의원들도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다.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과 2003년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야당인 한나라당이 밀어붙였다. 임 장관은 평양 8·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일부 인사들의 친북 행태가, 김 장관은 한총련의 미군 장갑차 점거 시위가 이유였다. 24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통과는 거야가 집권여당에 10여 년 만에 앙갚음을 한 것 같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5일 대표연설에서 과거의 횡포를 사과했건만.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임철호 농림부 장관#국회#해임건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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