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투저, 불펜운영의 틀까지 바꾸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8월 26일 05시 30분


타고투저는 확실한 카드부터 소진하는 등 불펜 운영의 틀까지 바꾸고 있다. 한화 같은 경우 선발보다 중간계투들이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기형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타고투저는 확실한 카드부터 소진하는 등 불펜 운영의 틀까지 바꾸고 있다. 한화 같은 경우 선발보다 중간계투들이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기형적인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야구 감독의 일은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지만 본질은 두 가지다. 거시적으로 좋은 팀 케미스트리를 만드는 것과 미시적으로 적절한 투수교체를 해주는 것이다. 투수교체의 요체는 불펜운영인데 오랜 경험을 거쳐 틀이 만들어졌다. 9회를 불펜 에이스인 마무리투수가 맡고, 8회에 불펜의 넘버2 투수인 셋업맨 투수가 등판한다. 이렇게 뒤로 갈수록 강한 투수가 배치되는 것이 메이저리그의 보편적 불펜 활용이다. 선발투수가 긴 이닝을 막아주면 바로 강력한 불펜투수로 이어갈 수 있기에 승리 확률이 높아진다. 2000년대 중반 삼성의 연속 우승을 창출했던 ‘지키는 야구’가 전형적인 불펜 가동 패턴이다.

그런데 타고투저가 극심한 2016년 감독들의 불펜 운영 기조는 생각의 틀 자체가 바뀌었다. 현역 감독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박빙의 경기가 되면 가장 강한 불펜투수를 선발 다음에 투입한다. 6회여도 좋다. 이것만 일단 막아내면 우리 공격에서 점수를 내 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7~8회에 보다 약한 불펜투수를 넣어도 된다.”

쉽게 말해 어지간히 지고 있어도 역전시킬 수 있고, 적당히 앞서도 언제든 뒤집힐 불안감 속에서 감독은 확실한 불펜 카드를 먼저 쓰고 보는 것이다.

삼성 왕조의 주역이었던 오승환(세인트루이스)이 떠난 이후, 철옹성 같은 위압감을 줄 마무리 투수는 부재한 현실이다. 믿을만한 불펜투수가 희소해지자 몸값이 비합리적으로 올라가는 이상한 상황이 빚어졌다. 한화가 정우람, 롯데가 손승락 등에 투자한 내역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타고투저 환경 속에서 이길 경기를 놓치지 않게 해줄 것 같은 불펜투수의 가치에 거품이 낀 것이다.

불펜진이 약한 팀일수록 그렇다. 상위권 팀도 현실적으로 4~5선발이 약하기 때문에 불펜투수의 비중을 높게 친다. 두산, NC, SK, KIA 등 가을야구를 노리는 팀들마저도 쓰는 투수만 쓰는 현상이 잦다. 한화 같은 팀은 아예 불펜이 선발투수 이상의 이닝을 던지는 기형적인 상황을 만들고 있다. 타력이 강하니까 역전의 기대감을 갖고, 불펜 혹사의 선을 너무 쉽게 넘어버리는 것이다.

타고투저는 결국 선발진의 빈약함에서 출발한다. 이 불균형은 고스란히 불펜진에 전가된다. 성적에 목숨줄이 걸린 감독들은 혹사를 기꺼이 감행한다. “불펜야구가 힘들다”고 하소연하면서도 그렇게 한다. 안 하고 지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를 견제할 프런트는 묵인한다.

이제 KBO리그에서 ‘정상적’ 불펜 운영을 시행하는 팀은 넥센, LG 정도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우리 팀 투수들은 연투를 시키면 결과가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쓰고 싶은 투수를 아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투수층의 빈곤이 타고투저를 낳았다. 그러나 그나마 괜찮은 투수 자원을 감독들이 마구 쓰면서 타고투저는 더 심화되고 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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