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땐 작은 일로도 상처받아… 고민 맘껏 털어놓게 해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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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편소설집 ‘샹들리에’ 펴낸 김려령 작가

“아이들의 말투가 가볍다고 해서 생각까지 가볍다고 여기면 오산”이라는 게 김려령 작가의 생각이다. 그는 “의식과 감각이 늙을까봐 걱정된다. 노련해지고 싶지만 늙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아이들의 말투가 가볍다고 해서 생각까지 가볍다고 여기면 오산”이라는 게 김려령 작가의 생각이다. 그는 “의식과 감각이 늙을까봐 걱정된다. 노련해지고 싶지만 늙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진짜 뭐 없을까? 글쎄, 음, 고드름? 그걸로 어떻게 사람을 죽여? 새끼야, 고드름 그거 되게 뾰족해. 너도 공부 좀 해라. 씨발, 손 시리게 고드름은.’ PC방에서 살인 사건 뉴스를 본 고등학생 3명이 범행 도구를 찾을 수 없는 살인을 상상하다 엉뚱한 일에 휘말린다. 누가 누구인지 표기도 없다. 오직 대화로만 이어져 한 편의 연극을 보듯 빨려 들어가면 웃음이 빵빵 터진다. 단편 ‘고드름’이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등 영화 원작 소설로 알려진 김려령 작가(45)가 첫 단편소설집 ‘샹들리에’(창비)를 펴냈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6일 만난 그는 나이보다 훨씬 앳돼 보였다. 》


○ “억눌러 온 것 모아 터뜨려”

책 제목은 7개 단편 중 하나에서 따오지 않고 그가 직접 지었다. “여러 개의 전구가 모여 하나를 이루는 샹들리에처럼 일곱 개 삶의 빛이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는 의미를 담았죠.”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이 봐도 단숨에 읽힐 정도로 흡인력 있고 탄탄하다. 집에서 일어난 찰나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이야기인 ‘이어폰’, 청소년 성폭력을 그린 ‘아는 사람’은 사실적이어서 가슴이 뻐근해진다. 작가는 20대의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이기도 하다.

“아동, 청소년 장편을 많이 쓰다 보니 스스로 금기시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때마다 단편을 쓰며 풀었어요. ‘아는 사람’은 성범죄자 대부분이 아는 사람이라는 점에 착안한 건데, 쓰면서 너무 아팠어요. 억눌렀던 걸 차곡차곡 담아냈다 터뜨린 게 ‘샹들리에’예요.”

‘그녀’ ‘미진이’ ‘만두’ 등에 나오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못마땅한 것 투성이다. 하지만 가슴에 쌓아두지 않는다. 툴툴거리고 욕하다 등짝을 얻어맞더라도 말로 다 뱉어낸다. 아이들이 모두 발산하는 캐릭터라고 말하자 그의 얼굴이 활짝 펴지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딱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거예요. 10대 때는 아주 작은 게 고민이 되고 그래서 아픈 거잖아요. 그걸 말하라고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혼난다면 그건 혼내는 어른이 잘못한 거라고요.”

○ “와서 딱 붙는 이야기 풀어내”


주인공들이 툭툭 뱉어내듯 말하고, 낄낄대며 장난치고, 때로 짜증내는 모습은 실제 10대를 보는 것 같다. 이런 감각은 어떻게 유지할까.

“전철, 버스를 자주 이용하고 분식집에서도 아이들을 관찰해요. 재래시장도 수시로 가고요. 완득이 엄마도 시장에서 본 이주 노동자의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예요.”

‘가시고백’ ‘너를 봤어’ ‘트렁크’ 등 독자를 사로잡는 작품을 꾸준히 써 온 그는 천생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오빠, 언니를 둔 삼남매 중 막내로, 쿵푸 유단자를 꿈꾸고 엄마가 슈퍼마켓 주인이 되기를 소망했던(자신이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았단다) 소녀였다. 말을 얼마나 차지게 이어가는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난 것도 몰랐다.

“생활에서 본 소재 가운데 딱 달라붙는 게 있어요. 그걸 글로 써요. 이야기가 저를 끌고 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인위적으로 덤벼서 쓰려던 건 다 실패했어요.”

그는 ‘작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이 너무 커 버겁다며 스스로를 ‘글 좀 잘 쓰고 싶은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겸손이 아니라 겁이 많은 거예요. 책이 나올 때는 어떤 반응일까 늘 무서워요. 하지만 글을 쓸 땐 가장 자유롭고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요. 모두 내 세상이죠.”

그러고는 특유의 시원스러운 웃음을 깔깔 날렸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김려령#샹들리에#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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